1924년 11월 22일

 

4개면에서 700여명, 미개간지 732정
자본금 100만원 조성, 대규모 간척



 

 

“京畿道 振威郡 梧城面 外 三面에 걸쳐 있는 國有未墾地 七百參拾貳町 五段步를 金教泳 外 七百四名이 再昨年 五月 十一日에 貸付出願하여 今年 十一月 五日附로 許可를 얻었는데, 그들은 百萬圓의 資本金으로 開拓組合을 成立하여 事業을 成就할 目的으로 지난 二十二日 該郡 梧城面事務所에서 出席員 三百八十餘名으로 設立總會를 開催하고 平澤警察署長과 振威郡 勸業課長의 立會下에 定款을 通過하고 左記와 같이 役員을 選定하였더다(하략)”(동아일보,  1924년 11월 29일)

‘평택’이라는 지역의 특성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간척’이다. 평택은 해안뿐만 아니라 진위천·안성천 등 하천과 밀접한 지형이다. 그렇다보니 자연적인 지형도 있지만 개간·간척 등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지형도 적지 않았다. 간척의 역사는 인류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해안가와 강을 경계로 잇는 평택도 오랜 간척의 역사를 갖고 있다. 1924년은 일제강점기이지만 평택에서 대규모 간척이 전개됐다.
해안가를 끼고 있는 오성면을 비롯한 3개면은 면내의 미간지를 대규모로 개간했다. 이 일대 주민들도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개간이 무엇보다도 필요했다. 이에 따라 오성면과 인접한 3개면에 걸쳐 있는 국유미간지 732정 5단보를 개간하기로 했다. 김교영 등 714명은 개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922년 5월 11일 대부를 신청했다.
여러 가지 어려운 과정을 거쳐 대부 신청은 1924년 11월 5일에서야 허가를 받았다. 그 결과 100만 원의 자본금을 마련하고 이를 추진할 개척조합을 설립하기로 했다. 1924년 11월 22일 오성면사무소에서 조합원 3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설립총회를 개최했다. 이 설립총회에는 평택경찰서장과 진위군 권업과장 입회하에 정관을 통과시키고 임원을 선임했다. 임원들은 다음과 같다.
조합장 이사 김교영, 부조합장 박세보, 전무이사 마학진, 이사 김학협·김태연, 평의원 정시은·장순태·홍종기·최승대·노재협·한용직·김련태·김경태·조돈오·조병석·서규석·박승문·박상오·조성대 ·정흥섭, 감사 박태병·김용덕·김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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