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길 위에서 태어나
길 위에서 살다가 길 위에서 죽는다
사람에게 길은 삶이고 소통이며
‘인생’으로 비유된다

 

전통적으로 평택은 길의 도시다.
평택지역에는 조선시대 10대로 뿐 아니라
중로·소로·수로·해로가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었다.
근대교통은 전통의 도로망에
철도와 신작로를 선물했다.
여기에 30여 년 전에는 항만이 생겨났고
조만간 고속철도까지 보태진다고 한다.
평택사람들은 복잡하게 얽힌
길 위에서 삶을 산다.





 

▲ 평택사람들의 길 연재를 위해 도일동 하리마을 답사에 나선 김해규 평택지역문화연구소장/드론 박성복 사장




길을 걷다, 길 위에 서다

■ 길 위의 삶, 길 위의 인생
인간은 길 위에서 태어나, 길 위에서 살다가, 길 위에서 죽는다. 그래서 길道은 ‘인생’으로도 비유된다. 사람에게 길은 삶이고 소통이었다. 원시 인간은 자연에서 생산물을 얻기 위해 길을 내었고 그렇게 얻은 생산물을 길을 통해 삶의 공간으로 옮겼다. 정착생활이 시작되면서 길은 생산물과 문화가 함께 이동하는 통로가 됐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잉여 생산물의 교환도 길을 통해 이뤄졌다.
국가가 출현하고 권력이 발생하면서 지배자들은 방방곡곡까지 길을 내려고 애썼다. 그들에게 있어 길은 지배와 수탈의 도구였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로 기억되는 로마의 도로망, 도로와 역참을 통해 제국을 지배했다는 페르시아, 동서 교통로로 세계를 지배한 몽골(원)도 지배와 수탈을 위해 길을 내었다. 삼국시대 이후 중앙집권이 강화되면서 우리 선조들도 전국적 도로망 구축에 힘썼다. 조선시대에는 한양을 중심으로 10대로가 구축됐다. 대로는 중로~소로~오솔길~고샅길과 거미줄처럼 연결돼 지배와 수탈, 소통과 교역에 활용됐다.
옛길은 육로와 수로·해로뿐이었다. 그러다가 근대 이후 철길·자동차길·하늘 길도 열렸다. 옛 사람들에게 길을 간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특정 직업이나 역할을 맡은 사람들 외에는 쉽게 마을 밖을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근대교통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삶의 공간은 확대됐다. 근대인들은 가정과 마을을 벗어나 교류하고 도시의 공간에서 소비하며 문화를 향유했다. 때로는 도시의 좁은 골목길 귀퉁이에 있는 카페에서 머리를 맞대고 시대를 고민하고 혁명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길에는 역사의 편린들과 다양한 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전통적으로 평택은 길의 도시다. 평택지역에는 조선시대 10대로 뿐 아니라 중로·소로·수로·해로가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었다. 근대교통은 전통의 도로망에 철도와 신작로를 선물했다. 여기에 30여 년 전에는 항만이 생겨났고 조만간 고속철도까지 보태진다고 한다. 평택사람들은 복잡하게 얽힌 길 위에서 삶을 산다. 과거 삼남을 오가던 수많은 시인 묵객들도 평택의 길 위에 문화의 편린을 남겼다. 필자는 지난 2년 동안 그 길을 걸었다.

■ 근대와 함께 사라진 전통의 길, 전통의 삶
예로부터 평택지역은 육로와 수로·해로가 고루 발달했다. 육로는 주로 사람이 오갔다면 수로와 해로는 세곡과 물자의 운송, 인마의 통행이 이뤄졌다. 근대교통이 발달하기 전 바다와 하천은 육로교통의 가장 큰 장애였다.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충남 당진·서산에서 평택을 거쳐 서울을 가려면 예산 신례원을 돌고 돌아 온양이나 천안을 거쳐야만 했다. 하지만 당진의 한진이나 아산의 백석포에서 배를 타면 30~40분 만에 포승읍 만호리 대진이나 현덕면 계두진·당포진(신왕나루)에 당도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과객들이나 안중장을 가려던 상인들, 혼례를 치르려던 사람들은 자동차 대신 나룻배로 아산만과 안성천을 건넜다.
평택지역 교통망이 완전히 근대 교통망에 편입된 것은 아무래도 1970년대 아산만방조제와 남양만방조제가 준공된 뒤라고 말할 수 있다. 2000년대 초에 개통한 서해안고속도로와 서평택지역의 공업화는 근대교통의 발달을 촉진시켰다. 근대교통망이 발달하면서 과거의 교통시설은 폐기대상이 됐다. 더구나 아산만 연안의 갯벌들이 평택항으로 개발되고 안성천 하류까지 간척되는 과정에서 어업과 수산업마저 위축되자 나루와 포구마저 더 이상 필요 없게 됐다. 물길이 막히면서 뱃사공들도 나루를 떠났고 뱃사람들에게 술과 안주를 팔았던 주막들도 문을 닫았다. 근대교통이 전통의 교통망을 쇠락케 한 것은 비단 수로나 해로교통만이 아니었다. 천년의 역사를 가진 평택의 육로교통망도 근대와의 괴리 속에 기억 속에서 지워졌다. 교통로가 잊히는 가운데 대로와 중로·소로 옆의 주막들도 문을 닫았다. 그렇게 전통의 길은 전통적 삶과 함께 근대 속으로 사라져 갔다.


 

▲ 오성면 양교리 답사에 나선 김해규 평택지역문화연구소장

■ 길의 재생은 '문화'만이 해답
평택지역에 근대도시가 발달하게 된 것은 간척과 철도교통, 미군기지와 관련이 깊다. 근대도시가 발달하면서 철도역이나 미군기지 정문 앞에는 도시가 발달하고 여러 갈래의 골목길이 만들어졌다. 도심의 골목길은 그 자체로 역사이고 문화였다. 도시민들은 골목길 어귀에서 삶을 나누고 문화를 배설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도시가 확장되고 공업화가 진행되면서 전통의 구도심은 신도심에 밀려나기 시작했다. 평택지역에서 구도심과 신도심의 양극화는 아직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조만간 첨예화될 것이고 지역발전의 화두가 될 것이다. 쇠락과 재생의 갈림길에서 평택지역 정치권은 고민 중이다. 아직 적정한 해법을 찾은 것 같지도 않다. 사실 구도심의 재생은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전통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땅값이나 건물세가 비싼 것도 도심재생을 가로 막는 걸림돌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걸림돌은 도심 골목길을 바라보는 우리시대의 인식이다. 도시의 골목길은 그 자체가 근대사이고 근대문화라는 인식은 지금 시점에서 절실하다. 최초의 군청 터·경찰서 터·학교 터·우체국 터·은행 터·시장 터·교회 터가 근대의 상징이고, 도심의 골목길과 건축물이 수많은 역사적 사건과 사회운동, 문화운동의 근거였다는 인식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말이다.
필자는 얼마 전 평택동 평택JC공원 옆 '평택화교소학교'가 헐리는 광경을 목도하고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평택근대역사의 상징이 사라져가는 모습은 벗을 잃은 슬픔처럼 아프게 다가왔다. 여러 차례의 진정에도 불구하고 평택지역 근대교통의 중요한 자산인 청북면 현곡교가 하천정비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사라지는 모습도 무척 가슴 아팠다. 반면 반가운 소식도 있다. 그동안 전통문화유산보전과 활용에 무디고 느렸던 평택시가 최근 ‘두강물사업프로젝트’를 통해 안성천·진위천 수로에 생태공원을 만들고 나루와 포구의 역사성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하는 것, 농촌전통자원의 데이터베이스화작업을 추진하는 것, 평택박물관 건립을 위해 팔을 걷어 부친 것 등은 조금 늦었지만 참 다행스런 일이라고 생각한다.
전통의 문화유산은 우리의 자화상이고 기억창고다. 필자는 지난 2년 동안 '평택의 길'을 걸었다. 그 길은 천 년의 길이고 오늘 우리가 새롭게 걸으려는 길이다. 천년의 길을 걸으며 부족한 지식과 식어버린 감성 때문에 무척이나 힘겨웠다. 하지만 이렇게 정해진 과정을 완주하게 된 것은 <평택시사신문>의 응원과 독자들의 지지 덕분이다. 다시 한 번 신문사 관계자 여러분께 지면으로나마 감사의 뜻을 전한다.
평택지역은 변화가 빠른 지역이다. 그 변화를 우리는 장밋빛으로 기대하지만 우리의 시각과 노력 여하에 따라 장밋빛일 수도 또는 잿빛일 수도 있다. 전통의 문화유산은 그것이 무엇일지라도 매우 중요하다. 그 전통 속에 내가 있고 우리의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말미에 천상병의 시로 마무리 한다.

길은 끝이 없구나/ 강에 닿을 때는/ 다리가 있고 나룻배가 있다.
그리고 항구의 바닷가에 이르면/ 여객선이 있어서 바다 위를 가게 한다.

길은 막힌 데가 없구나./ 가로막는 벽도 없고/ 하늘만이 푸르고 벗이고/하늘만이 길을 인도한다./ 그러니/ 길은 영원하다.(천상병, ‘길’ 전문)



 

▲ 옛길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아름다운 자태를 보이는 오성면 양교리 길

 

 

<평택시사신문>이 평택학 특별기획으로 준비한 ‘평택사람들의 길’은 김해규 평택향토사학자이자 평택지역문화연구소장이 2014년 9월 3일, 본지 제131호를 시작으로 제218호까지 격주로 모두 42회에 거쳐 연재했습니다. 2년여 동안 ‘평택사람들의 길’로 교감하면서 우리에게 과거를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안목과 지혜를 갖게 해준 김해규 평택지역문화연구소장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평택학 특별기획 연재를 관심과 애정을 갖고 읽어준 독자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끝>



글·사진/김해규 평택지역문화연구소장
다큐사진/박성복 평택시사신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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