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리’ 이름 사용 약속, “이주보다 더 어려운가요?”

2·13 합의 제대로 이행 안 돼, 민·민 갈등은 ‘안 될 말’

 
주한미군 이전사업의 일환으로 팽성읍 노와리로 이주한 대추리 주민들이 정부와 체결한 2·13 합의사항 중 ‘대추리’라는 마을 이름을 사용하도록 허락한다는 내용이 합의 5년이 넘도록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추리 마을명 사용은 지난 2007년 2월 정부와의 합의사항 가운데 ‘노와리에 이주단지를 조성할 경우 행정구역 명칭을 대추리로 변경하는 것은 해당지역에 기존에 거주하는 주민의 동의 등 행정구역 변경에 관한 규정에 따른 절차와 요건 구비 시 승인한다’는 내용에 따른 것이다.
대추리 주민들은 “이전 당시 대추리라는 지명을 사용하게 해 줄 것을 약속하고 합의했으며 정부와 평택시가 확실하게 자신들을 믿고 움직여달라고 요청해 주민들의 이주가 시작됐다. 그러나 절차상의 문제일 뿐이라고 설득했던 평택시가 이주가 끝난 지금은 대추리 주민들이 나서서 노와리 주민들을 설득하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대추리 신종원 이장은 현재 노와1리부터 4리까지 찾아다니며 주민설명회를 열어 대추리라는 이름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노와리 주민들 역시 대대로 터를 잡고 살아온 곳의 이름이 바뀐다는 사실을 쉽게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자칫 주민 간의 갈등이 불거질 위험성까지 안고 있다.
신종원 이장은 “우리는 마을을 빼앗기고 이주할 당시 정부와의 정당한 합의사항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뿐이지 결코 노와리라는 이름을 강제로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277세대의 노와리 주민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투표에 참여해 2/3 정도가 찬성해야 성립될 수 있는 일인데 자신들에게 당면한 문제가 아닌 다음에야 누가 시간 내서 투표에 참여해 찬성을 하겠느냐”며 “평택시가 나서서 마을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분쟁을 조절해주어도 될까 말까 하는 판국에 주민들끼리 마을 이름을 갖고 서로 해결하라고 맡겨버리는 것은 주민 반목을 더 부추기는 행위다.

합의사항 일부 미 이행
이주 마을 이름, ‘대추리’ 요원해
나무 10그루 이식, 실체 없는 나무로
상업용지 8평 공급, 분양권으로 대치
전시관·창고 소유권, 아직 평택시가

우리에게 대추리라는 이름은 미군기지이전이라는 국책사업에 떠밀려 정든 고향을 떠나며 그래도 사라질 뻔 했던 공동체를 지켜낸 주민들의 평화의 메시지이자 고향을 기억하기 위한 상징적인 이름이어서 이것만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대추리 마을명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설명회 등 일차적인 의견수렴 과정을 거친 후 세대마다 우편발송을 통해 찬반 투표를 진행하고 회신용 봉투에 넣어 확인하는 절차를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마을 주민 대부분이 노인들인데다 근처에는 변변한 우체통도 없는 상황이어서 일부러 우체통을 찾아 우편물을 발송해줄 주민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평택군·송탄시·평택시 3개 시·군이 통합할 1995년 당시에는 공무원 입회하에 통·반장 등 조사원이 세대별 방문조사를 통해 주민의견을 조사한 바 있어 이번에도 같은 방식으로 주민 의견을 묻는다면 투표 참여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마을 주민들은 “전체지명을 다 바꿔달라는 것도 아니고 현재 대추리 주민들이 이주해 있는 곳만 대추리라는 마을명을 쓸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인데 의견수렴 절차를 그런 식으로 거치게 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평택시의 의지가 없는 것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2·13 합의사항 중 아직까지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것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을 주민에 따르면 정부가 기존의 대추리에 있던 수목 10그루를 이주단지에 옮겨주는 것으로 합의했으나 그 수목은 그대로 베어졌고 대신 다른 수목 10그루를 이주마을에 옮겨 심어 나무가 갖는 역사성과 주민들의 추억을 고스란히 훼손시켰다고 밝혔다.

 
또 평택지원특별법상 상업용지 8평을 공급한다고 합의했던 사항은 공급이 아닌 분양권으로 대치됐으며 미군기지이전시설종합계획(MP)이 완료되는 시점에서 국방부가 주민에게 기지이전사업내용을 상세히 설명한다는 부분도 아직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국방부가 평택시에 임시관리권을 넘긴 전시관이나 마을회관 농기계 보관창고 등의 공공건물도 소유주가 아직까지 마을 주민이 아닌 평택시로 남아있는 상황이다.
약속이행이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와 평택시가 미군기지 재배치라는 국책사업으로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대추리 주민과의 약속을 조속히 이행하는 것은 또 다른 분쟁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평화박물관 건립으로 분주한 대추리

대추리 역사 ‘평화박물관’에서 되새긴다

주민·평화센터·작가 총출동, 9월 7일 개관
‘거기 마을하나…’ 대추리 기록 사진첩 발간

 
‘대추리’ 마을의 역사를 한 눈에 보게 될 평화박물관이 9월 개관을 목표로 팽성읍 대추리 이주마을단지 내에 건립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대추리 평화박물관은 팽성읍 대추리 일원으로 미군기지이전이 본격화되자 투쟁을 거듭하다 결국 대대로 이어오던 삶의 터전을 빼앗긴 채 눈물을 머금고 이주를 감내해야 했던 마을 주민들과 그 삶의 터전에 남겨진 역사를 보존·기억하기 위해 건립하는 것이다.
평화박물관은 현재 마을주민을 중심으로 평택평화센터, 이윤엽 작가, 뜻 있는 대학생들이 함께 힘을 모아 건립하고 있으며 특히 건립기금으로 사용되는 재원의 상당 부분은 마을 주민들이 그동안 틈틈이 봉투를 접어가며 마련한 마을기금인 것으로 알려져 그 의미를 더한다.
오는 9월 7일 개관을 앞둔 평화박물관은 농민들이 대대로 사용해 온 농기구와 생활용품, 미군기지 이전 반대 투쟁과정을 담은 기록, 함께 참여했던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며 무인 북카페와 함께 2층은 쉼터로 만들어져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지난 역사를 되새겨볼 수 있는 휴식처와 생각의 장을 제공할 예정이다.
평화박물관은 당초 마을 입구 전시관에 꾸며질 예정이었으나 장소가 협소해 농기계 보관창고를 최종 낙점, 개·보수를 거쳐 박물관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에 따라 마을 입구 전시관 건물은 용도를 바꿔 1층에는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식당과 강당은 물론 비전동에 있는 평택평화센터가 오는 9월 이전할 예정이며, 2층에는 사물놀이패 강습장으로 사용된다.
평택평화센터 이명희 사무차장은 “대추리 마을 주민들은 이주 후 마당 텃밭을 가꿀 기력도 없이 3년 간 무기력하게 지냈는데 이번 평화박물관 건립으로 인해 생기를 되찾았다”며 “박물관과 전시관은 옮겨 심은 나무가 뿌리내리며 살기 위한 매개체이며 마을 주민들이 이곳에서도 예전처럼 활력을 되찾아 공동체 안에서 다시 어울려 오순도순 살아가는 모습을 확인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또한 “시골에서 생활했던 주민들이라 목수며 미장이며 다들 한가지씩은 다 하실 줄 알아서 자연스럽게 박물관을 짓는 일도 척척 해내고 있다”며 “이곳은 단순한 체험마을이 아니라 평화를 생각하는 교육의 장으로서 마을 주민 스스로가 꾸려가며 외부사람들과 마을 주민들이 다시 소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평택평화센터는 평화박물관 개관에 맞춰 미군기지 확장에 맞선 4년간의 기록을 담은 사진첩을 만들어 소장을 원하는 시민들에게 배포할 예정이다. ‘거기 마을하나 있었다(가제)’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질 사진첩에는 노순택, 정택용, 김철수 작가가 제공한 엄선된 사진들로 구성됐으며 선주문 방식으로 제작해 8월 30일 발간될 예정이다. 금액은 권당 1만5000원이며 신청은 평택평화센터에 하면 된다.(문의 : 658-0901)


■ 대추리평화박물관 이윤엽 작가에게 듣는다

평화롭던 때의 ‘대추리 모습 재현’

마을 어르신과 새로운 사람의 만남의 장 되길 …

 
대추리박물관 기획 방향은
대추리평화박물관은 전시의 개념이 아니라 예전 대추리에서 투쟁할 당시 주민들이 많이 지쳐있을 때 왜 투쟁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으로 농사짓고 평화로운 시절의 모습들을 담아 만들었던 주민역사박물관을 그대로 재현해 낸 것이다.
애초에 설계했을 때는 마을 입구에 있는 전시관을 사용할 예정이었는데 막상 와서 보니 공간도 비좁고 여러 가지 여건이 맞지 않았더, 그러던 중에 예전의 주민역사박물관도 창고에 마련했다는 생각이 떠올라 지금의 농기계 보관 창고를 활용하게 되었다.

어떤 것들이 전시돼 있나
대추리에서 평화롭게 농사짓던 어르신들의 생활 모습과 5년여 동안 투쟁했던 시간들, 대추리와 함께 연대했던 사람들의 흔적이 전시될 예정이다. 또한 이 공간은 싸움의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2층에는 도서관이나 가볍게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도 만들 예정이다. 그래서 혹 대추리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이곳을 찾는다 해도 이곳의 역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박물관 건립의 의미는
대추리평화박물관이 외부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질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다만 대추리 어르신들이 이런 공간이 생김으로 인해 다시 어깨를 활짝 펴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투쟁의 시간들이 꼭 힘든 시간만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다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향후 대추리전시관으로 옮기게 될 평택평화센터가 이분들과 상생해 어르신들이 행복한 꿈을 꾸실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