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현장의 펜스를
홍보판으로 활용하면 어떨까
사기업이라면 방치하지 않았을 공간
펜스 길을 지나는 숱한 사람들과
시민들이 궁금해 할 것들에
구체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 이수연 전 부이사장/한국사진작가협회

마을은 물론 멀쩡하던 숲과 산까지 옛 모습이 통째 사라지고 붉은 흙 속살만 펑퍼짐하다. 낯설어진 고덕국제신도시 개발현장 말이다. 지난 4년 이상 기록촬영에 매달린 이 현장에 서너 주 간격으로 다녀가는데도 갈 때마다 모습이 바뀌고 있다. 그와 비례해서 540만평 개발지구가 본격적으로 공사 중임을 알리려는 듯 도로 곳곳의 양옆에 가로막을 설치하고 있다. 아무 장식 없는 흰색의 높은 펜스 길을 지나노라면 썰렁하다 못해 미로 같은 기분이다.

밤이면 더하다. 좁고 긴 공간에 갇힌 폐소閉所 공포증마저 든다. 다만 이 일대에서 가장 번잡하다할 갈평사거리 일대 펜스에는 온통 어지러운 문구로 가득 차있다. ‘평택이 서울, 서울이 평택입니다/ 국제문화의 신도시 고덕/ 전통과 첨단의 공존 고덕/ 산업과 주거가 어우러진 자족도시 고덕/ 누리세요. 감성 가득한 주거 공간 고덕/ 평생을 윤택한 고덕신도시/ 고풍스러운 미덕이 숨 쉬는 국제신도시’ 등등을 아주 커다랗게 반복해서 써 놓았다. 누구 보라고, 얼마나 납득하라고 써놓은 것들일까. 

평택과 서울을 등가等價화한 것이나 ‘국제문화’ ‘전통과 첨단’ ‘산업과 주거’까지는 전철 노선과 삼성에 기댈 수나 있다고 하자. ‘감성 가득한 주거 공간’은 또 무언가. 대를 이어오며 토착 문화를 일군 주민과 마을이 모두 사라졌는데 콘크리트 신도시에서 찾을 수 있는 감성은 어떤 것일까. ‘평택 고덕’이라는 말을 억지로 만들어내려는 나머지 슬로건도 마찬가지다.

개발현장에 펜스를 치는 이유는 따로 있겠지만 앞서 개발한 소사벌지구는 최소한 예술적 이미지를 활용하여 디자인으로 접근하려는 자세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차라리 이 펜스들을 홍보판으로 활용하면 어떨까. 사기업이라면 결코 방치하지 않았을 이 대형 공간에, 펜스 길을 드나드는 숱한 사람들과 시민들이 궁금해 할 것들에 구체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삼성전자 부근에는 ‘평택 삼성전자는 어떤 사업장으로서, 완공되면 어떤 고용창출이 가능하고 지역경제에는 어떻게 기여하며 또 평택의 위상이 어떻게 변하는데 현재 공정률이 어느 정도입니다’ 또 평택도시공사가 추진하는 사업지구에는 ‘이곳은 평택시가 직접 추진하는 지역입니다. 구도심인 신장쇼핑몰에서 연결되는 지역으로서 완공 후에 이러저러한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되며 신도시와 구도심이 이러저러하게 상생하는 효과를 가져 올 것입니다’ 나아가 중앙공원이나 알파탄약고, 민세 생가 지구 같은 공원예정지에도 ‘이 일대에는 생태중심 힐링 공원 또는 지금껏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특화공원과 역사공원을 조성할 계획으로 시민 나들이 장소가 전무하던 우리 시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 공간을 만들 것입니다’

어디 이뿐인가. ‘시청부지입니다, 경찰서부지입니다. 평화예술의 전당 예정지입니다. 박물관 예정지입니다. 언제 착공하여 언제 입주할 것입니다. 그 규모는 어떻고 시민들의 접근방법은 무엇이며 이곳에 수용할 내용은 무엇입니다’라고 하면 어떨까.

필요하면 이미 확정하거나 추진 중인 개발관련 사항들을 조감도 등을 통해 시각적 이해를 도울 수도 있을 것이다. 지역별 신설도로망은 어떻게 형성하고 연장계획인 전철이나 철도노선 계획 같은 것들도 밝혀준다면 최소한 몇 년 동안 이곳을 지나는 이들은 우리시의 신도시 관련 내용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인지하여 자발적 잠재적 홍보요원이 되지 않겠는가. 나아가 ‘평택시나  LH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이렇듯 소소한 데까지 신경 쓰고 배려하네’하고 감동할 것 같다.

가수 겸 작곡자 노영심은 1992년에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에서 ‘사소한 것까지 다 기억을 한다면 얼마나 피곤할까 생각하겠지만 아주 가끔씩만 내게 일깨워준다면/ 어때요/ 매력 있지 않아요/ 모르는 나를 일깨워 주듯이 볼 때마다 새로움을 주는 사람이라면 그 어떤 능력보다 소중하지요…’라고 노래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시시콜콜한 것까지 생각하고 배려하는 것이 소통이고 그럴 때 사람들은 감동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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