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 산하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7월 1일에 매년 되풀이 되는 논란과 파행 끝에 2013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6.1% 오른 시급 4860원으로 결정했다. 이를 하루 8시간 주 40시간 기준으로 계산하면 월 101만 5740원이다. 이 금액은 정부가 정한 3인 가구 기준 최저생계비 121만원에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이다. ‘88만원세대’라는 말이 2007년에 나왔으니 6년이 지난 내년에도 여전히 많은 청춘들과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고달픈 노동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최저임금을 마냥 올릴 수만은 없는 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영세한 중소기업가나 자영업자들은 이 정도의 최저임금을 지불하면서 단기 계약직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들을 고용하여 근근이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니 이들에게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이 정도의 임금을 받으면서 노동을 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우리가 거주하는 아파트나 직장의 청소부 아줌마나 경비아저씨들은 대체로 이 최저임금 정도의 임금을 받으면서 우리의 주변을 깨끗하고 안전하게 유지시켜 주고 있다. 파견직, 임시직, 호출직, 단기 계약직, 시간제 아르바이트 등과 같은 노동형태를 띠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개 이 최저임금 정도를 받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특히 그 중에서도 평균적으로 남성임금의 63% 정도만 받으며 일하고 있는 취업 여성노동자들은 65%가 비정규직이므로(남성 비정규직 비율은 40%), 취업여성의 65%는 최저임금 정도의 임금만 받으며 일하고 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정규직으로 취업을 했다고 하더라도 무한경쟁 속에서 끊임없이 고용불안에 시달리거나, 노동의 기회가 계절적 요인이나 불확실한 경기 때문에 간헐적으로 그리고 변덕스럽게 주어지는 까닭에 불안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밤샘운전까지 해도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별로 없는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눈물겨운 실상은 지난번에 총파업을 통해서 알려진바 있다. 건설경기의 불황으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건설노동자와 대학 졸업 후에도 비정규직을 전전해야 하는 젊은이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도 끝이 없다.
이는 소위 일해도 가난한 워킹푸어(Working Poor)이야기다. 부지런히 일하면 가난을 면하고 살림살이가 나아져야 하는데, 일을 해도 여전히 가난하고 불안하고 힘든 삶을 계속 살아야 하는 사람들 이야기다. 이 워킹푸어라는 말은 미국에서 2003년도 무렵에 보편화되었던 것인데, 이제 2012년 대한민국도 워킹푸어를 실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우리나라 경제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하고 발전하였다고 해도 우리 사회의 한편은 더 부유해지고 화려해지고 요란해지지만 우리 사회의 다른 한편의 노동현실은 갈수록 험악해지고 피곤해지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요즈음 내 주변이 깨끗하고 안전하고 편리한 것은 이렇게 저임금속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 덕분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자신의 어머니는 돌보지 못하면서 요양병원에서 우리 어머니를 정성껏 돌봐 주셨던 요양보호사, 자신의 집보다는 우리 집을 더 빛이 나도록 청소해 주고 빨래를 해 주셨던 파출부 아줌마, 경비아저씨, 청소아줌마, 택배아저씨, 택시기사 아저씨, 식당아줌마, 배달원, 아르바이트 학생, 사회복지사, 보육교사들! 그 분들은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지만 헌신적으로 자기의 시간과 노동력과 열정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워킹푸어의 한 사람 한 사람은 결과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기 것을 아낌없이 내주는 익명의 기부자들이고, 나머지는 그들의 서비스를 값싸고 편리하고 신속하게 이용하면서 혜택을 보고 있는 수혜자들이다. 대학교수인 나의 봉급의 상당부분은 낮은 강사료를 받으며 시간제 비정규직으로 우리 학생들을 가르치는 많은 시간강사들의 노고와 희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많이 부끄럽고 죄스럽다.
언젠가부터 나는 24시간 영업점이나 365일 영업점을 보게 되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세상이 아무리 무한경쟁체제로 변했다고 하더라도, 어느 누군가는 저녁과 휴일의 안락하고 달콤한 휴식을 반납하면서 피곤하게 밤샘근무 휴일근무를 하며 희생을 해야 한다는 것은 좀 잔인해 보인다. 그 노동자들에게 그 근무는 자발적이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최근 문제가 되는 대형마트들의 일요일 영업 제한 문제는 재래시장 살리기 차원뿐만 아니라 종업원들의 휴식보장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 어느 야당 후보는 선거공약으로 ‘저녁이 있는 삶’을 내세우는데, 여기에 ‘휴일이 있는 삶’을 추가해야 하지 않을까?
세상이 점점 더 험악해지는 그 중심에는 이러한 노동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노동문제들은 온통 우리를 감싸고 있는데, 이러한 문제들이 관심거리나 논란거리가 되지 못하고 좀처럼 정치이슈화 되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이상하다. 각종 선거에서 최저임금, 워킹푸어 문제, 휴식시간 보장, 비정규직 철폐와 같은 가장 일상적인 문제들이 이슈화 되어야 하는데, 막상 선거 때가 되면 기이하게도 이러한 문제들은 실종되어 버리고 만다. 특히 부자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정당을 기꺼이 선택함에도 힘겹게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선거 때에 각 정당과 후보자들의 노동정책들을 꼼꼼히 점검하여 이기적이지만 자신에게 유리한 정당을 선택해야하지만, 오히려 선거에 관심이 없거나 참여를 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내가 보기에는 민주화가 된 나라에서 각종 노동의 난제들을 풀 수 있는 방법은 정치이슈화가 최선일 것 같은데 현실에서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 난감하고, 그래서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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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진 철
국제대학교 교수,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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