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사랑하며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부부 유학생, “한국인 화를 잘 내서 무서워”
자칭 딸딸이엄마, 그래도 당찬 커리어우먼

 
지금은 세계 10위권을 자랑하는 무역대국으로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는 우리나라지만 불과 4~50년 전만 해도 세계 최하위의 빈곤국이었음은 감추고 싶은 사실이다. 세계인들이 놀랄 정도로 부러워하는 이런 빠른 성공의 뒷전에는 무엇보다 강한 교육열과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굳은 신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또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가족을 부양하려 몸뚱이 하나만 가지고 광부로, 간호사로, 건축가로 이역만리 타국을 마다 않고 누볐던 가난한 민초들의 희생도 밑거름이 되었다.
이젠 과거 우리들이 그랬던 것처럼 코리아드림을 꿈꾸며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늘어나고 있다. 인종과 국적을 가리지 않는 증가세에 힘입어 다문화사회의 도래도 성큼 다가왔다. 특히 동남아시아나 조선족 위주의 단순노동자 유입에서 보고 배우고 느껴 자국의 개발모델에 적용하려는 유학생들의 발길 또한 잦아지고 있는 추세다.
카메룬 출신 다문화인 롱치마리(36. 여)가 한국에 온 것은 7년 전인 2005년이다.

화 잘 내는 한국인, 그래도 치안은 최고
콩고의 한국어문화원에서 근무하고 있던 남편 ‘올레메 구만뚜어’를 만나 사랑을 키워온 마리는 심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한국에 유학가려는 남편을 따라 선뜻 타향살이를 선택했고 함께 입국한 둘은 한국에서 식을 올리고 정식 부부가 됐다. 현재 남편은 아주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이수중에 있다.
“한국 사람은 만날 때마다 먹었어요? 라고 인사를 하는 것이 참 낯설었어요. 카메룬에서는 잘 지내는지 어떻게 사는지 물어보는 것이 인사였거든요”
딱 부러짐 없이 잘못이 있어도 잘 지적하지 않고 돌려 말하거나 감싸주는 한국인을 볼 때 적응하기 어려웠다는 마리는 이젠 먼저 “식사했어요?”라고 물어볼 정도로 한국 문화에 젖어들고 있다고.
“독일도 가보고 미국도 가봤지만 한국의 겨울이 너무 좋아요. 생활비가 너무 많이 드는 것만 빼면요”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일자리 찾기도 녹녹치 않아 고민하던 마리는 지난 6월 말 시작된 평택 여성새로일하기센터 다문화강사 직업훈련과정에 등록해 꿈을 키워가고 있다.
“한국사람 말 너무 빠르고 어려워요. 일곱 살, 세 살 된 딸 둘을 낳았는데 아이들을 위해서 집에서는 영어도 하고 불어도 해야 해서 배우는데 어려움이 많아요. 그래도 한국은 일자리만 있으면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해요”
한국식으로 말하면 자신은 딸딸이 엄마라며 한국의 남아선호 사상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마리는 카메룬에서 컴퓨터 관련 업종에 종사했을 만큼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으로 살았었다.
“좋은 사람도 많지만 대체로 한국 사람은 화를 잘 내요. 아마도 목소리가 너무 커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안전하기는 해요. 밤에도 안심하고 돌아다닐 수 있는 한 유일한 나라죠. 카메룬이나 미국, 독일에선 여자 혼자 밤에 돌아다니는 건 생각하지도 못하거든요” 마리는 처음 화가 난 것처럼 말하는 한국인과 이야기를 하면서 놀랬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뛴다.

“한국문화 전도자로 남고파”
“저 어렸을 때 할머니가 매운 음식을 자주 해주셨죠. 그래서 저도 매운 음식을 잘 먹었었는데 한국 김치는 너무 맛있어요” 집에서는 주로 카메룬 음식을 즐겨 먹는다는 마리는 한국식 매운 음식을 좋아해 특식으로 먹는 경우도 많고 그 중 김치와 김치찌개를 좋아하지만 아직 만들지는 못한다며 얼굴을 붉힌다.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아요. 이번 교육과정을 마치면 다문화가정 어린아이를 돌보는 일을 하고 싶어요. 요리하는 것도 좋아해서 여건이 된다면 카메룬 전통음식점을 차려보고도 싶고요”
2남 2녀 중 장녀인 마리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고등학교 2학년 때 학업을 중단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소녀가장 역할을 해야 했다. 때문에 같은 처지에 놓인 아이들을 보면 고국에 있는 동생들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한국에 온지 7년이 됐지만 그동안 한 번도 카메룬에 간 적이 없어요. 아이가 커서 7살이 되었는데…, 아이들은 할머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죠. 물론 사진이나 인터넷을 통해 모습은 알고 있기는 하죠. 언젠간 꼭 돌아가야 할 고국이지만 한동안은 참고 지내야죠”
마리는 아직 ‘미세스 올레메’라 불리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다. 한국식 문화에 접해 온 탓이다. 하지만 언젠간 ‘마리’를 버리고 ‘올레메 부인’으로 가야함 또한 당연히 여길 만큼 고국의 문화를 잊지 않고 있다. 장차 한국문화 전도자로서의 역할이 주어지길 바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어요. 나쁜 한국인도 있고 좋은 한국인도 있죠. 하지만 ‘이 사람은 싫어’라고 말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모두 사랑해야하죠”
전국에 많은 여성새로일하기센터가 있지만 다문화여성을 대상으로 한 교육은 평택지역이 거의 최초라고 할 만큼 아직은 가야할 길이 멀다. 세인들의 관심 속에 야심차게 벌이고 있는 다문화강사 직업훈련의 결과가 주목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제 막 첫 걸음을 뗀 마리의 도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돼 제2, 제3의 마리가 한국을 찾길 기대해본다.
 

※다문화가족이란?
우리사회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결혼이민자, 북한이탈주민(새터민), 외국인거주자 및 그들의 자녀들을 비차별적으로 부르는 용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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