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로 다져온 삶, 서예로 다스려

소사벌서예대전 새롭게 변모·발전시킬 터
남은 인생, 끝까지 ‘서예와 함께해 나갈 것’

문득 시간의 길 위에 멈춰 서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볼 때가 있다.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나이라면 그동안 수많은 일들과 희로애락을 거치며 울고 웃는 날들이 이어졌으리라. 긴 시간을 지나는 동안 삶의 굴곡은 그대로 현재의 주름과 표정을 만들어낸다. 나이 들수록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농촌운동으로 다져온 삶
“예전에는 마을단위로 4-H 운동이 있었습니다. 전 10대 때부터 4-H운동을 자연스럽게 농촌운동, 재건운동, 새마을운동 등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대통령 표창도 받았지요. 제가 어릴 때는 초등학교도 없이 글방에서 한문을 익혔어요. 중학교도 못 다니고 농사짓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저 역시도 그랬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생활을 하려면 나부터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치렀습니다”
전. 평택시의회 의원이자 현재 소사벌서예대전 운영위원장을 맞고 있는 이민관(67) 위원장은 그동안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회상에 잠긴다. 포승읍 내기리가 고향인 이민관 위원장은 서당만 간신히 다니고 중학교도 못 나온 어린 시절부터 평택시의회 4대와 5대 시의원이 되어 평택항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활동하던 시기, 그리고 포승읍에서 조양서실을 운영하며 평택서예협회를 맡아 이끌고 있는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천천히 들려준다. 웃으며 들려주는 지난 삶이지만 그 이야기가 그리 녹녹치만은 않다. 
“제가 해온 일 중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청소년선도위원장으로 있을 때였습니다. 지역에서 청소년들을 선도하며 문제들을 해결해주었는데 자칫 탈선으로 이어져 힘든 인생을 살 뻔 했던 청소년들이 잘 자라 고맙다는 말을 할 때는 정말 행복했지요”
배움의 기회를 놓친 탓에 학연에 기댈 수 없었던 이민관 위원장은 의원으로 선출될 당시 자신이 그동안 해왔던 일로만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기뻤다고 말한다. 그는 의원이 되고 난 뒤 자신의 마지막 봉사를 의회에서 보내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활동했다고.

정재양민(政在養民)의 의정활동
“의원으로 활동할 당시 평택항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는데 평택항 발전을 위해 많이 뛰어다녔던 생각이 납니다. 하지만 2번이나 의원직을 맡아하다 보니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후배들에게 물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지만 어떤 일이든 의지대로 할 수 없다면 더 이상 욕심 부리지 않고 그쯤에서 그만두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민관 위원장은 의정활동을 하던 당시 서경에 나오는 정재양민(政在養民)의 정신을 항상 생각했다고 말한다. ‘정치의 목적은 백성을 봉양하는데 있다’는 이 말은 그가 의원으로 재직하던 당시 늘 가졌던 중심 생각이었으며 어릴 때부터 몸에 익혀왔던 봉사의 삶과도 맥이 닿아있다. 
“살다보면 누구나 상대방과 의견이 맞지 않는 경우를 많이 겪게 됩니다. 그런 경우 원인을 상대방에게서 찾다 보면 일은 점점 꼬이고 복잡해지기 마련이지요. 원인은 가장 우선적으로 자신에게서 찾아야 해결될 수 있습니다. 제가 이따금 후배 의원들을 만나면 들려주는 말이기도 하지요”
이민관 위원장은 의원직을 내려놓은 후 다시 서예를 시작했다. 서예에 관한 공부도 새롭게 시작하고 책도 읽으며 마음을 가다듬어 서예에 매진하고 있다. 요즘은 고속도로 휴게소에 자주 들러 싼 값에 나오는 좋은 책을 구입해 읽는다는 그는 이따금 병문안을 가거나 선물 할 일이 있을 때는 늘 책 선물을 즐겨한다고.

현재 삶에 최선 다할 것
“어려서 서당에 다니며 배운 것들은 내 삶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농촌운동이나 시의원을 할 때, 그리고 현재 서예인으로 살아가면서 까지도 당시의 배움은 큰 영 향을 미쳤지요. 당시 서당에서는 명심보감이나 천자문, 중용 등을 배웠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안 쓰는 한자들이 많아 실용한자를 배우기 위해 주변의 훌륭한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며 배우기도 했습니다”
시의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평택의 주민자치센터마다 서예반을 만들었다는 그는 중국을 오가며 한중서예교류전을 펼치며 우리나라는 물론 평택 서예의 위상을 알려왔다. 현재 제17대 소사벌서예대전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전국을 대상으로 열리는 소사벌서예대전을 좀 더 새롭게 발전시키기 위해 ‘소사벌’이라는 이름대신 우리 지역의 유명한 역사인물 가운데 한 명을 내세워 지역을 알리는 것은 물론 평택서예의 활성화도 꾀할 생각이다.
“제 아이들에게도 특별한 교육을 강요하진 않았습니다. 다만 제가 늦게까지 책을 읽거나 글씨를 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그냥 자연스럽게 교육이 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이제 천천히 생을 마무리해야 할 단계라는 걸 생각하고 있는데 남은 생은 끝까지 서예와 함께 갈 것입니다”
도와 예를 갖추어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데는 서예만한 것이 없다. 글 쓰는 체를 보면 성격이 나타난다는 것도 아마 그런 뜻일 것이다.
전직 시의원으로서, 그리고 현재 평택의 서예를 이끌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그는 평택의 발전을 위해서는 지도자들이 잘 해야 한다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그는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은 시점에서 어린 시절부터 이어온 서예를 통해 사람들과 교류하며 자신을 가다듬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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