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8월 4일
 

 

사소하고 우연한 사건으로 2명 즉사
고덕면·포승면에서, 가난·술이 원인

 

“지난 四일 진위군 고덕면 좌교리(振威郡 古德面 坐橋里)에서는 소작권 이동에 감정으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바, 그 자세한 말을 듣건데, 전기 주소에 본적을 준 정대환(鄭大煥, 34)은 다년간 박이근(朴二根)의 관리에 관할하는 토지를 소작하여 오던 중 지난 봄 돌연 무조건 소작 이동을 하였다는 바, 이래 감정이 꺼지지 않던 중 지난 四일 날 정대환은 박이근에게 종자 값을 청구하여 주느니 못주느니 하여 장시간 언쟁을 하던 중 소작인이던 정대환은 분을 참지 못하고 二, 三차 때린 것이 마침내 큰 돌 위에 자빠져 두골이 깨져 즉사하였다는 바, 가해자 정대환은 목하 경찰서에서 취조중이라 한다(하략)” (동아일보, 1937년 8월 10일)

요즘처럼 폭염과 열대야가 지속되면 함께 오르는 것이 불쾌지수다. 불쾌지수가 높아 가면 사건사고도 많아지는데, 한 여름 평택에서 두 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한 건은 고덕면이고 다른 한 건은 포승면에서 발생했다.

고덕면의 사건은 가난이 원인이었다. 좌교리에 거주하는 정대환은 박이근의 소작인으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1937년 봄 아무런 말도 없이 소작권을 빼앗겼다. 갑자기 당한 일이라 감정이 남아 있던 정대환은 8월 4일 박이근에게 종자 값을 청구했다. 종자 값을 놓고 말싸움을 하던 중 정대환은 박이근에게 두세 차례 폭력을 행사했고 서로 치고받고 싸웠다. 그 결과 박이근이 큰 돌에 넘어져 두개골이 깨어져 즉사했다.

포승면 사건은 술이 원인이었다. 석정리에 사는 박시양은 안중시장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친구를 만나 술을 마셨다. 취기가 남아있던 박시양은 집에 도착해 아내에게 점심을 차려달라고 했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찬 보리밥을 내어놓자 어떻게 먹느냐고 생트집을 잡아 부부싸움이 시작됐다. 아내가 무서워서 도망가자 작대기를 들고 따라갔다. 아내를 때렸는데 피하는 바람에 두 살 아들이 맞아 머리가 터져서 즉사했다.

두 살인사건에서 정대환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지만, 박시양은 그 길로 종적을 감췄다. 두 사건 모두 사소한 일에서 비롯됐지만 생명을 앗아가는 사건으로 뒤숭숭한 하루였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