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는 산부인과 병원은 평택에서는 비교적 산모님들이 많이 찾는 병원이다. 제법 역사도 오래되었고, 의료진들도 오랫동안 근무한 분들이 많아 환자와 의사들의 관계가 비교적 좋다고 평이 난 병원으로 평택 사람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대부분 어디에 있는 병원이며 무엇을 하는 병원인지를 알고 있는 규모에 비해 인지도가 제법 높은 병원이다.
이 병원에 처음 근무하면서 느꼈던 것이 다른 병원에 비해(물론 그때까지 근무한 병원이라곤 대학병원밖에 없으니 비교라는 것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 병원에 오는 산모들은 아이의 출생 시(時)를 맞추어 달라고 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평택은 시골에 가까운 지역이라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꽤나 유명한 점집들이 몇 군데 있어서 더욱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나름대로의 그 이유를 추측했던 기억이 있다.
평택에서는 아이를 낳을 때 ‘시(時)’를 꽤나 중요시 한다는 느낌이 든다. 대학병원에서와는 조금 색다른 경험이었다. 한창 바쁘던 대학병원에 있을 때는 꽤나 까칠해서 이렇게 시를 잡아오는 분들의 바램을 잘 들어주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이런저런 인맥으로 치고 들어와 수술 스케줄을 꼬이게 만들기 때문에 저 윗선으로 들어온 V VIP가 아니면 수석 레지던트 선에서 대부분 ‘못해!’라고 거절을 하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나름 꽤나 차별 없는 공정한 행위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수술을 하여 아이를 낳는 경우 많은 엄마들이 “몇 시에서 몇 시 사이에 아이를 낳게 해주세요!”라고 부탁을 한다. 아마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이리라 생각되는 이런 일들은 21세기로 들어서 첨단과학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는데도 별로 줄어들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세상이 점점 살기가 힘들어질수록 이런 부분이 더 강화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서점의 한 귀퉁이에는 여전히 사주팔자와 관상학뿐만 아니라 타로점이나 점성술 같은 서양의 점술까지 차지하고 인기를 끌고 있는 세상이기도 하다.
정직한 노력에 의한 정직한 결과가 얻어지지 못하는 세상이니 거기에는 당연함이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내가 있는 병원에서는 그렇게 시(時)를 잡아오는 분들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주는 편이다. 그것을 굳이 거절할 만큼 병원이 바쁘지도 않거니와 고객만족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때이기도 한 지라 방문하는 산모들 모두에게 원하는 시간에 아이를 낳게 수술계획을 짠다. 물론 새벽 2시에 낳게 해주세요. 새벽 여섯시에 낳게 해주세요. 등등 일과시간을 벗어난 부탁은 정중하게 거절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출생 時’를 맞추어 낳는 아이들을 오랫동안 보면서 그 시(時)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니 이제는 이 시(時)와 관련하여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출생의 시(時)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 시(時)를 잡아오시는 부모의 마음,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을 이제는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 이해하는 마음도 변화라면 변화일 수 있겠지만 내가 가장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출생의 시(時)’보다는 ‘잉태의 시(時)’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데 된 것이다.
옛 임금님들도 자손을 만들 때 정갈한 몸과 마음으로 좋은 시(時)를 맞추어 합궁을 했다고 하지 않던가? 거기에서 시(時)는 몰라도 그렇게 아이를 만들기 위해 서로 준비하는 과정은 꽤나 매력적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그 사랑의 마음을 가득 담아 몸을 깨끗이 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과 예쁜 아기를 바라는 마음을 함께하여 아이를 갖는다면, 그리고 열 달이라는 시간동안 그 잉태된 아이를 그 마음으로 잘 키워온다면, 굳이 어떤 시(時)에 태어나던 그 아이의 미래는 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바캉스베이비라는 말도 있고 홍대 앞 주말 베이비들도 있듯 세상에 마음의 준비 없이 즉흥의 감정으로 잉태되는 많은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 중 일부는 부모가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온갖 불법적인 루트를 통해 낙태가 되기도 하고, 임신이 지속된다고 하더라도 엄마의 사랑보다는 걱정을 더 많이 안고 태어나게 될 터인데 정성 속에 잉태된 아이와는 다른 길을 가게 되지 않을까?
점쟁이 할머니에게 비싼 돈을 주고 억지로 시를 맞추어도 아이가 태어나서 힘들어하는 경우를 보게 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점집 할머니가 낳게 해달라는 시간보다 조기에 진통이 걸려 그 시를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본다.
영험하신 점쟁이 할머니도 이렇게 실수를 하는 마당에 태어난 시간에 아이의 운명을 맡기는 것은 많은 부분에서 쏟는 정성에 비해 불확실한 행위이기도 하다. 효율을 많이 따지는 세상의 논리와도 맞지 않는다.
그러나 정말 시를 맞추고 싶다면, 이렇게 조절이 불가능한 것을 억지로 조절하려 하기보다는, 조절이 가능한 부부관계에서 그 질을 높이는 것이 훨씬 더 그럴싸하지는 않는지? 사랑하는 사람과 존중하는 마음으로 내가 눈앞에 보고 있는 이 아름다운 사람과 꼭 닮은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마음으로 아이를 갖는 것이 바르게 ‘시(時)’를 잡는 것이 아닌지?

 

 

 



노완호
성세병원 산부인과 마취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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