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뜻을 품고 작은 일에 충성하라

 
“교장선생님, 식사하신 그릇 이리 주세요. 저희가 설거지 할게요”
“내가 먹은 밥그릇은 내가 씻어야지 누굴 시켜요! 산에 놀러왔으면 똑같이 일을 해야지. 안됩니다”
1970년대 초. 평소 낚시가 취미이던 교장선생님께 한 번만 같이 산에 가시면 다음부터는 절대 모시고 가지 않겠노라 말씀드리며 산행을 권하고 권하기를 2년,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마침내 마음이 움직인 교장선생님을 모시고 천안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풍세, 보산원을 거쳐 댓거리에서 내려 1박 2일로 광덕산엘 오르던 날 이야기입니다. 
텐트를 치고 찌개를 끓여 저녁을 먹고 난 뒤 동행한 선생님들이 설거지를 하며 교장선생님 밥그릇도 씻어드리려 하자 교장선생님은 한마디로 거절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교장선생님과 했던 약속을 어기고 몇 차례 더 산엘 올랐지만 당신이 드신 밥그릇은 단 한 번도 다른 사람 손에 넘기질 않으셨습니다.
미국 34대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Dwight . D . Eisenhower,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아이젠하워 장군이 퇴역을 해서 군복을 벗고 미국 컬럼비아 대학 총장을 하던 때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학생처장이 총장실에 와서 학생들이 강의실을 오가며 잔디밭을 밟고 다녀 잔디가 다 죽을 지경에 이르렀으니 먼저 경고를 하고 그래도 계속 잔디밭으로 다니면 처벌을 할 수 있는 교칙을 마련해야겠으니 허락해달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다 듣고 난 아이젠하워는 학생처장에게 대답하기를 “학생들이 강의실을 오가기 편리해서 잔디밭을 밟고 다니는 것이니 처벌할 학칙을 만들 것이 아니라 그 곳에 길을 만들어주세요” 
한 나라의 역사도 어느 누구의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중심이 달라지듯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도 교육의 중심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교육방침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들에게 무릎 꿇는 벌을 주지 마세요” 무릎 꿇는 벌은 왜정시대 때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을 얕보고 한 짓입니다. 민주주의사회에서는 어느 누구라도 부모 앞이 아니면 절대 무릎을 꿇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학교 황소관 복도에서 만난 홍성영 교장선생님이 이력서를 받아들고 저에게 하신 첫마디 말씀입니다. 일제 강점기 일본에 유학해서 입교대학 영문학부를 나오신 교장선생님은 해방된 지 20년이 넘도록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식민지 교육제도는 빨리 바꿔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래전 일입니다. 서울 어느 대학교 총장님이 아침에 출근을 하다가 길에 떨어진 휴지를 줍는 학생을 보았습니다. 총장님은 차를 멈추고는 유리문을 내려 학생을 불렀습니다. “학생! 이름이 뭐야? 점심시간에 총장실로 오게” 그 학생은 그 날 총장님에게 한 학기 등록금에 해당하는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휴지 한 조각을 주워서 장학금을 받았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온 학교에 퍼졌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학교 안에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길바닥에 떨어진 휴지를 볼 수 없었지만 장학금 해프닝은 그 한번으로 끝이었습니다.
하지만 홍성영 교장선생님의 ‘휴지 줍기’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일회성 ‘깜짝쇼’가 아니었습니다. 매일 아침 학교 교문 앞에 있는 교장 사택을 나서면서 부터 학교 교문을 지나 고 운동장을 거쳐 교장실에 들어가기 까지 홍 교장 선생님은 길에 떨어진 휴지를 하나하나 주웠습니다. 그리고는 모은 휴지는 학생을 불러 휴지통에 넣게 하셨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선생님의 휴지 줍기는 계속되었습니다.
피는 못 속인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합니다 돌아가신 홍성영 교장선생님 큰 자제 한광중학교 교장을 지내고 지금은 정년퇴직을 한 홍준기 교장 선생님 또한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단 한 번도 건너는 길을 벗어나 아무 데로나 길을 건너다닌 적이 없습니다. “교장선생님! 차도 안 오는데 그냥 건너가시죠” 하지만 그런 얍삽한 말은 홍준기 교장선생님 인품을 모르는 무례한 ‘유혹’입니다. 홍준기 교장선생님에게는 신호등이 있는 길이든 없는 길이든 다를 것이 없습니다.
1976년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는 전체조회에 홍성영 교장선생님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 다음 주에도 교장선생님은 나오시지 않았습니다. “어디 편찮으신가?” 모두가 궁금해 했습니다. 그 다음 주 교장선생님은 하얀 마스크를 하고 조회대에 올라오셨습니다. 겨울방학 동안 탁구부 학생들과 함께 운동을 심하게 해서 감기 몸살이 걸렸다며 염려할 일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학생들과의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3월 26일 아직 채 회갑도 맞지 못한 이른 연세에 교장선생님은 손수 일으켜 세운 정든 한광학교를 곁에 두고 많은 일들을 남겨두신 채 홀연히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한광학교 운동장에 치러진 홍성영 교장선생님 장례식에는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학교와 아무 인연이 없는 많은 분들까지 발 디딜 틈 없이 많이 오셔서 지역사회 발전과 학교교육에 이룩한 교장선생님의 크나큰 덕망을 기렸습니다. 
충혼산 기슭에 진리를 심어 사랑과 믿음으로 가꿔진 동산
꽃다운 넋들의 꿈과 보람이 활짝 피어 향기로워라 ……
맑고 바른 홍성영 교장선생님의 사랑과 가르침
오늘도 큰 나무 되어 잘 자라고 있습니다.

※작가 이동진은 홍익대 미대, 한광고등학교 교사, MBC창작동요제 대상곡 ‘노을’의 작사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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