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그때 그시절 평택은
성주현 교수의 그때 그시절 평택은 - 123 - 진청학원을 지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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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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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9월 28일

   
 

무산아동 위해 진청학원 야학원 개설
위기적 운영에 지역 유지에 후원 호소

“無産兒童 敎育이 얼마나 重要性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數言을 要한다. 그러면 平澤社會라는 조그마한 新興都市에 向學 無産兒童에 敎育機關은 如何한가? 卽 振靑學院이라는 것이 있으니, 이제 그 夜學院의 歷史와 現在를 들어 世人의 認識을 끌고 아울러 平澤有志 諸氏의 奮起가 있기를 바란다.(하략)” (동아일보, 1932년 9월 28일)

3·1운동 이후 전국적으로 불기 시작한 향학열은 지역의 유지나 사회단체로 하여금 교육에 대한 관심을 갖게 했고, 그 결과 각종 교육기관이 설립됐다. 평택에서도 정규교육기관인 보통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학생 수가 제한돼 있어 야학 등 비정규 교육기관이 설립됐는데, 대표적인 곳이 진청학원이었다.

1920년대 교육의 대상은 무엇보다 ‘무산아동’이었다. 무산아동은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매우 적었다. 진청학원은 무산아동을 위해 1928년 5월 1일 야학원을 설립했다. ‘열과 희망’으로 똘똘 뭉친 중학생 4~5명이 매일 서울에서 내려와 무산아동을 모아서 진위청년회관을 빌려서야 비로소 야학원을 개설할 수 있었다.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청년회원의 순회 소인극을 공연하거나 행상을 해 충당하기도 했다. 교사들은 새벽 4시에 서울의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내려와 오후 7시부터 야학원에서 가르치다가 수면 부족과 과로로 불귀의 객이 되기도 하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학생들에게 수업료로 매월 12전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1932년 4월의 상황을 보면 학생 수 246명에 수업료를 내지 못하는 학생이 8명, 퇴학하는 학생이 42명이었다.  8월에는 141명의 학생 수에 수업료 미납 학생이 102명, 퇴학한 학생이 21명으로 학생 수가 점차 줄어들어 야학원을 유지하기가 불가능하게 됐다.

동아일보 주재기자는 ‘지방논단’에 진청학원의 상황을 알리고 “진위 제씨여! 그네들을 원조하라. 진청야학원을 지지하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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