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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원칼럼 - “애경사 문화 바뀌어야”
안호원 박사  |  ptsis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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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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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혼례식 또 한 날은 장례식, 요즘 빈번하게 겪는 일상이다. 예전에는 봄가을 좋은 날 잡아 혼례식을 올렸으나 지금은 사시사철 가리지 않고 연중행사로 혼례를 치른다. 하객들의 편의를 감안해 토요일이나 일요일을 택해 혼례 날을 잡던 옛 관습도 무너져 버린 지 오래다. 365일 아무 때나 시시콜콜 시도 때도 없이 결혼 청첩장이 날아든다.
어떤 때는 참으로 난감할 때도 있다. 청첩장 봉투에 쓰여 있는 혼주의 이름이 선뜻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다 사교상 인사로 주고받았던 명함을 보고 무작위로 보내온 것이 분명할 때도 있다. 이럴 때는 불쾌하다기보다 소태를 씹을 때처럼 입안에 쓴 맛이 번진다. 이런 식으로라도 축하를 받고 싶은 것인가. 장례식 또한 그렇다. 연중무휴로 빈번하게 통보되는 일상사로 되어 버렸다.
부고소식을 접할 때마다 만감이 교차하며 마음이 숙연해질 때가 많다. 특히 고인 되신 분과 살아생전 아주 각별한 관계였다든가 반대로 마음 한 구석에 앙금을 지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는 경우엔 각별한 애달픔이 밀물처럼 몰려온다. 일상의 분주함을 핑계로 몇 해 동안 소식이 뜸했던 날들에 대해 후회를 하며 가슴아파한다.
그렇지만 다 부질없는 일이다. 부고소식 또한 청첩장처럼 때론 상주와는 일면식도 없는 분인데 이 역시 이런저런 인연으로 문자라도 받게 되면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때론 체면치레의 일환으로 예의를 갖춰 조의를 표하지만 진정으로 애도하는 마음이 심연으로부터 우러나지 않을 때도 있다. 애도의 뜻을 전하기는 하지만 형식에 불과한 일일 수밖에 없다.
혼인과는 달리 사람이 겪게 되는 생로병사의 마지막 관문은 죽음이다. 후손이나 가족들은 극진하고도 경건하게 고인을 추모하고 이별의 예를 갖추는 것이 도리고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람, 저사람 다 불러 모아 힘을 과시하려는 행사 판을 경쟁적으로 벌이는 것처럼 행동들을 하고 있으니 그 모양새가 추하고 꺼림칙해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몇 해 전 일이다. 과거 기자로 있을 때 국장으로 재직했던 분으로부터 청첩장을 받았다. 그간 소식도 궁금하고 뵙고도 싶어 일부러 시간을 내어 강남에 있는 예식홀을 찾았다. 식장 앞에서 신랑의 부친인 국장님을 뵈려고 했으나 신랑과 서 있는 분이 다른 분이다. 시간을 잘못 알았나, 혹은 예식홀을 잘못 찾았나 확인해보았지만 시간도 맞고 이름도 맞는데 사람은 다른 것이다. 알고보니 동명이인이었다. 더욱 속상한 것은 초청자 역시 나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얼핏 생각해도 어떤 자리에서 주고받았던 명함을 보고 청첩장을 보낸 것 같다. 생각할수록 소태를 씹은 것처럼 입안이 씁쓸했다.
또 며칠 전에는 고교 동창회장으로부터 동문부고 장모 상 문자를 받았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 동문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름도 생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동문이 350여명이나 되 그럴 수밖에 없다. 주일이 끼어있는데다 지방에 있어 전화라도 할까 하다 혹시나 해서 동문회장에게 전화를 해서 그 동문이 무슨 과를 나왔으며 누구인지를 물었다. 그런데 동문회장도 누구인지 자세히 모르겠고 단지 그런 문자가 자기에게 와서 관례대로 모든 동문들에게 통보한 것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동문회 모임에 한 번도 나오지 않은 동문인 것이다. 또한 다른 동문의 애경사에도 전혀 참여치 않았던 동문으로 밝혀졌다. 상을 당한 동문에게 예의를 갖춰 조의를 표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전혀 얼굴도 기억할 수 없어 그냥 넘겼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은 허전했다.
꼭 미국 문화를 닮으라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문화도 이제는 바뀔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적어도 진정으로 축하하고 진심으로 슬퍼하며 애도하는 사람들이 참석하는 그런 문화가 되었으면 한다. 겉으로는 축하하고 슬퍼하지만 내심으로 불편함을 느낀다면 축하받는 당사자나 고인에게 대한 예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여름철 장마 비가 며칠째 이어지던 날 같은 직장에 있던 동갑내기 지우의 부음을 전해 받고 문상을 간 적이 있었다. 빈소를 보면서 놀랬다. 순간 ‘정승과 정승 집 개’가 불현 듯 떠오른다. 그 지우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애경사 때 참여는 품앗이라며 빠지지 않고 꼭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상주가 있는 빈소는 너무도 썰렁했다. 과거 몸담았던 직장 동료들조차 오지 않았다. 그 지우가 유명인사, 세도가였어도 그랬을까. 살아서는 그렇지만 죽어서까지도 차별이 되는 인간사.
양 옆으로 빽빽하게 늘어선 조화가 있는 옆 빈소와는 달리 조화 두 개가 덩그렇게 놓여있는 지우의 빈소는 너무도 쓸쓸해서 쉽게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하고 기다려보았지만 늦은 시간이 되어도 역시 직원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급기야는 복받치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토해내며 상주와 부인까지도 놀라게 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영정 속의 동갑내기 지우가 말한다. “인생사가 다 그런 것 아닌가? 너무 슬퍼하거나 가슴 아파 하지 말게나. 그렇지만 이대로 가는 게 아쉽고 서운하네 그려. 그래도 나는 자식 생각하고 빠지지 않고 다 다녔건만…”

 

   
 





 深頌 안 호 원
한국심성교육개발원장
심리상담사, 시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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