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위’ 음악은 악보 없이
즉흥적으로 연주자의 심성과
감성을 자유분방하게 담아내는
열린 형식의 음악으로
가장 서민적이고 가장 한국적인
음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 김승국 대표
수원문화재단

우리나라의 민속 기악곡 중 예술성이 가장 뛰어난 것을 꼽아보라 한다면 주저 없이 시나위와 산조를 꼽을 수 있다.

‘시나위’ 음악은 독주 혹은 합주로 서로 다른 악기가 악보 없이 즉흥적으로 연주자의 심성과 감성을 자유분방하게 담아내는 열린 형식의 음악으로서, 가장 서민적이고 가장 한국적인 음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음악적 형식은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음악형식으로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고도의 예술성을 갖고 있는 음악이다. 그렇기에 고도의 기예와 예술성을 갖춘 고수들만이 연주가 가능한 까다로운 음악이다.

이러한 음악적 중요성을 인정해 정부는 1973년 11월 5일 ‘시나위’를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52호로 종목지정 하고 경기 전통음악의 불세출로 불리는 지영희(1909~1979)를 예능보유자로 인정했다. 

지영희는 경기남부 지역인 평택의 세습무 가계 출신으로서 피리·대금·호적·단소·해금·북·장고 등 거의 모든 전통악기 연주에서 명인의 경지에 이르렀던 재인이었다. 그는 악기 연주뿐만 아니라 노래와 춤에도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한성준으로부터 태평무·승무·살풀이 등의 춤을 정식으로 전수 받았던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는 또한 참된 교육자이기도 했고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전통적인 가락들을 채보·정리해 전통음악의 체계를 세웠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국악관현악단을 창단했고, 수많은 창작무용곡이나 창작관현악곡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지영희류 해금산조와 박범훈류 피리산조의 모체가 된 지영희류 피리산조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그러나 그러한 지영희가 개인적 사유로 1974년 그의 부인인 가야금산조 예능보유자인 성금연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남으로서 그가 보유하고 있던 중요무형문화재 제52호 ‘시나위’는 그 다음 해인 1975년 5월 3일 종목지정이 해제돼 중요무형문화재 종목에서 사라져 오늘날까지 이르렀다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민속음악계를 대표하는 원로 기악연주자인 피리의 최경만·박범훈·이종대·박승률·김광복·한상일·송선원 등, 해금의 김영재·최태현·박정실·신상철·김무경·홍옥미 등, 대금의 이철주 등, 장단의 장덕화·김덕수·최종실 등은 지영희의 직계 제자들이다.

지영희가 보유한 ‘경기시나위’는 피리시나위·해금시나위·호적시나위·시나위합주인데 근래에 이르러서는 시나위합주가 주로 연주되고 있다. 만일 시나위 종목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면 보존·전승 기반도 유지돼 지영희가 보유한 ‘경기시나위’가 온전히 전승되고 있을 것이다. 

비록 지영희가 이민을 떠나 이역만리에서 고인이 됐지만 그의 예술세계를 온전히 계승한 제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민간 기악연주곡을 대표하는 ‘시나위’가 중요무형문화재 종목에서 배제된 채 방치되어 있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지금이라도 그의 직계 제자들로 구성된 예술단체를 보유단체로 지정하고, ‘시나위’ 중목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재지정하는 것이 우리나라 전통음악의 자존심을 바로 세우는 길이 될 것이다.

※ 이글은 서울문화투데이에 먼저 실렸으며 동의를 얻어 본지에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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