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토요일 양주에서 군 복무하는 아들을 만나고 왔다.
그날 오전 11시 경 아내와 함께 야트막한 산등성이에 있는 부대를 겨우 찾아갔다. 아들과는 이미 약속을 하고 통화를 했기 때문에 면회 신청을 하니 약 10분 후에 단정한 정복차림으로 나타났다. 지난 8월말 진주에 있는 공군교육사령부에 입대한 후 11월에 배치 받아 온 곳인데, 그 사이 집에 2박3일 휴가를 다녀갔으므로 다시 3주만에 만나는 셈이었다. 그 사이 대한민국 남자로서 국방의 의무를 잘 감당하며 건강하게 자대생활을 잘 적응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대견하고 반가웠다.
승용차로 우리는 가까운 동두천시 지행역 부근의 신도심지로 갔다. 아들은 그날 오후 5시까지 외출을 허락 받았기 때문에 멀리 갈 수 없었다. 고층 상가건물이 밀집한 골목에 들어가니 온통 식당이었다. 두리번거리다가 한 집을 골라 들어갔는데 갈비와 샤브샤브를 같이 익혀서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제공되어 나왔다. 요즘은 군대도 음식이 잘 나온다고 하지만 그래도 "짬밥" 맛 그 이상일 수는 없는 모양이다. 아들은 맛있게 잘 먹었고, 덕분에 우리까지 포식했다.
우리는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식당을 나와 2차로 사우나탕에 가기로 했다. 골목에 찜질방까지 갖춘 목욕탕이 하나 눈에 띄었다. 아직도 아들의 귀대시간까지는 3시간 넘게 남아 있어 같이 목욕을 한 후 푸근하게 쉬고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결국 우리는 그렇게 오후 시간을 아들과 같이 보내고 4시에 사우나탕을 나왔다. 다시 승용차로 아들을 태워 부대로 가서 여유있게 귀대시키고 돌아왔다. 모처럼 아들 덕분에 주말 오후 호사를 한 것 같아 우리 부부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무척 행복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북한에서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을 줄이야. 그날 오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건 이틀이 지난 19일 정오였다. 북한의 조선중앙방송이 그날 낮 12시 특별방송을 통해 김정일의 사망소식을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우리 정부가 전군에 경계태세 강화 조치를 내렸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만일 아들을 만나던 그날 김정일의 사망소식이 바로 전해졌더라면 따뜻한 밥 한 끼 같이 못 먹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언론은 이 엄청난 사태에 대한 정보를 진작 수집하지 못한 국정원의 무능을 탓하고 있지만 나는 오히려 늦은 정보수집에 대해 고마워하는 마음이 크다.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사실이 밝혀진 그 다음날, 아내는 아들의 전화를 받았다며 전쟁이 나지 않게 기도를 요청 받았다고 했다. 앞으로 북한 공산주의 정권이 쉽게 무너져 통일이 훨씬 앞당겨질 수도 있을 것이라 전망해 보면서 더 이상 전쟁이 없는 평화통일로 남북이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고 싶다.
“평화의 왕 아기 예수님, 북한 동포들도 가족끼리 배 부르게 먹고 사우나를 즐길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오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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