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닉부이치치’ 신드롬이 지구촌에 희망의 불꽃을 피운 적이 있었다. 그는 두 팔과 두 다리가 없는 장애자로 이 세상에 이 세상에 태어났다. 어찌 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어둠 속에서 죽는 날만 바라보며 살아가야 할 아주 불행한 사람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편견의 시각으로 바라본 그는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비록 머리와 몸통밖에 없는 그였지만 그는 어떤 정상적인 육체를 갖고 있는 사람보다 더 밝게, 더 기쁘게,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았다.
그런 그가 처음부터 그런 마음으로 산 것은 아니었다. 친구들로부터 ‘외계인’ ‘괴물’이라고 놀림을 받을 때나 힘들고 지쳐 죽고 싶을 때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팔 다리가 없으니 죽는 것도 맘대로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고통이야 말로 어떠했겠는가? 그럴 때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너를 이렇게 만드신 데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있으며 언젠가는 그 전모가 분명히 드러날 것”이라고 아들을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틈만 나면 “너는 정상적인 다른 아이들과 놀아야 해. 너는 단지 몇 가지 사소한 신체 조직이 없을 뿐이야”라고 용기를 불어넣어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춘다는 말이 있지만 ‘닉부이치치’를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꿔놓은 것은 어머니의 칭찬과 사랑과 격려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오늘날 세계적인 희망의 전도사가 될 수 있었다.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두 개의 안경을 끼고 살아가는 것 같다. 하나는 ‘칭찬의 안경’이다. 그 칭찬의 안경을 끼면 사람을 위로하고, 인정하고, 힘이 솟구치게 만들어 준다. 결국 칭찬의 안경은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얻게 되는 효과를 보게 된다. 또 하나는 ‘비판의 안경’이다. 비판의 안경을 끼고 사람을 보게 되면 인간관계가 파괴된다. 그리고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자신에게서 멀어지게 된다. 그래서 나중에는 외톨이가 되어 외로운 사람이 되고 주변에는 아무도 없게 된다.
똑같은 사물을 보고, 똑같은 경치를 보고,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바라보아도 사람들의 느낌은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이들은 보여 지는 겉모습에만 관심을 두고 또 어떤 이들은 그 사물의 그림자만 쳐다보며 각각 다른 해석을 하게 된다. 자기 눈에는 분명 ‘저 정도라면 됐다’ 싶은 생각이 들어도 어떤 이는 ‘저건 글렀어, 저건 아니야’ 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자신이 어떤 안경을 끼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답이 다른 것이다. 모든 것을 자기 잣대로, 자기 색깔대로 타인을 평가하려고 하는데 큰 문제가 있다. 그렇게 느끼는  것은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자신이 믿고자 했던 것을 무조건 믿으려고 하면서도 자신이 믿고 싶지 않은 것들은 믿지 않으려고 하는 못된 습성이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보는 잣대에서 평가하다보니 오해도 생기고 시험에도 들고 서로에게 상처를 안겨주며 불행한 삶을 살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보이는 두 개의 눈이 아닌 것 같다. 보이지는 않지만 가슴 속에 있는 눈이 중요한 것 같다. 바로 가슴 속 그 눈을 통해 본 그 사람이 어떤 품성의 사람인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사람인가? 아니면 부정적인 사람인가 하고 말이다. 긍정적 가슴의 눈을 가진 사람은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희망과 계획하심을 볼 수 있지만 부정적 가슴의 눈을 가진 사람은 세상 가운데 절망과 원망과 불평만을 맛보게 된다. 긍정과 부정의 시각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한 인생의 행과 불행,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연약한 인간이기에 매일매일 겪게 되는 갈등과 관계 속에서 우리는 쉽게 좌절하고 쉽게 무너지기도 한다. 그럴 때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 편견의 눈이 아닌 긍정의 눈이다. 반복되는 일상의 좌절을 만나도 우리는 이겨야 한다. 설령 그 좌절 속에서 무력감을 느끼더라도 생명이 있음에 감사하며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지난해 12월, 몇 개 교단 목사들이 강남에서 구국기도회를 가졌는데 이 때도 화제가 불법으로 방북해 물의를 빚은 한 모 목사의 행위를 비난하며 그 목사가 소속된 교단을 싸잡아 나쁜 시각으로 보는 것이었다. 이때 원로 목사 한 분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그 문제의 목사 교단 출신임을 밝히며 일부 목사들이 그런 이념을 갖고 있을 뿐 교단 전체를 이념적으로 오해하지 말아 줄 것을 요청했다.
인간은 언젠가는 헤어진다. 헤어진 후 소중함을 느끼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이제 색안경을 벗어버리고 세상을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자. 그러면 칭찬할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칭찬을 하는 습관을 갖도록 하자. 그런 습관을 갖게 된다면 그 어느 누구와도 사이가 나빠지려야 나빠질 수가 없다. 자기를 칭찬하는데 누가 싫어할 사람이 있겠는가. 밖에서 일하고 온 남편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따뜻하게 모시며 칭찬을 아끼지 말자. 또 집안에서 가족들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한 아내에게 거룩하고 존귀함으로 칭찬을 아끼지 말자. 그리고 자식들에 대해서도 서로에 대해 칭찬을 하는 아름다운 가족이 되자. 편견의 눈, 색안경을 벗어버리고 가족부터 칭찬하는 마음 속 맑은 눈을 가만히 여는 우리가 되자. 그러면 이 세상 또한 밝은 사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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深頌 안 호 원
한국심성교육개발원장
심리상담사, 시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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