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의 천국 평택

평택역에서 시외버스로 고작 두 정거장,  천천히 걸어가도 몇 분 걸리지 않는 유천리.
유천리에서 안성천이 흐르는 다리 하나를 넘으면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안궁리입니다. 그래서 평택은 행정구역이 경기도지만 오가는 말에는 충청도 말씨가 많습니다. 처음 평택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밑창’이라는 말을 듣고는 너무 낯설어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색하기도 해서 한참동안 귀에 생소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고 보니 평택은 경기도 ‘밑창’입니다.
‘밑창’ - 바닥, 밑, 아래, 끝…
‘구두밑창’이나 ‘깔창’ 이런 단어가 생각나서 혼자 웃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내를 하나 사이에 두고 평택과 충청도는 어찌 그리 음식 맛에서 차이가 나는 것인가요?
화춘옥, 대동옥, 고박사냉면, 파주옥, 엉터리갈비, 45년 역사 제물국수, 강서면옥, 기린옥, 땡집, 만리향, 유정통닭, 섬…
일일이 다 소개하기도 벅차리만치 모두 다 전국적으로 소문이 난 음식점들인데 음식점 점포수만 많았다면 결코 평택음식이 ‘전국구’의 명성을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평택음식은 먹어 본 사람에게 그 맛을 두고두고 잊지 못하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평택음식을 맛본 사람은 그 순간부터 모두가 다 평택음식 예찬자가 되었고 평택음식 자랑이 입에서 절로 나오는 평택음식 홍보요원이 되는 것이지요.
평택과 안성을 비교해보아도 그렇습니다. 평택과 안성은 거리가 불과 2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외래인에 대해 지극히 배타적인 특성을 보이는 안성의 보수성과 달리 모든 사람에게 마음이 열린 평택이 지닌 개방적 지역문화의 특성은 사람이 살아가는 일상생활에서는 물론  음식문화 차이 또한 그 맛과 질에 있어 비교상대가 되지를 않습니다.
왜정시대 기찻길을 놓으면서 경부선 철도는 처음에 안성을 통과하기로 설계되었습니다. 하지만 유림(儒林)에서 동네 앞에서 기적소리가 울리면 지기(地氣)가 사라져서 결국 동네가 망하고 만다며 기찻길이 지나가는 것을 결사반대 했고 그 덕분에 기찻길은 예정에도 없던 평택을 지나게 된 것을 보아도 평택은 다른 고장에 비해 평택으로 몰려드는 외지인들에 대해 편파적인 지역감정을 들어내지 않고 지리적으로도 서해바다와 접해있어 모든 것을 포용하는 개방적인 특성 탓에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사이좋게 한데 어울려 살면서 각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문화가 평택에 정착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1970년대 후반. 오랜 가난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며 주말을 이용한 등산과 낚시 레저산업이 붐을 이루기 시작했고 고속도로가 뚫리고 자가용 자동차가 증가하면서 편리해진 교통수단 때문에 사람들은 소문난 음식점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는데 평택에서 가장 먼저 붐을 이루기 시작한 것이 바로 ‘고박사-고복례‘ 냉면이었습니다.
평택동 제일목욕탕 옆 길모퉁이 집에서 처음 테이블 두세 개를 놓고 시작한 ‘고박사’냉면(창업주 고순은 先生). 시원한 냉면육수와 프라이팬에 튀겨서 나오는 빈대떡 맛에 순식간에 전국적으로 냉면돌풍을 일으키며 하늘을 찌르는 이름을 얻기 시작했는데 가히 냉면으로 ‘천지개벽’을 일으켰다고 할 만큼 기존에 이름이 있던  모든 냉면을 압도하는 인기를 얻은 것입니다.
오래전까지 흔히 냉면집 하면 피난 온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어른들이 드나드는 음식점으로 여겼지만 고박사 냉면은 하루 아침에 남녀노소 모든 계층에게 다 인기 있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평택과 안성 곳곳에 있는 저수지를 오가는 낚시꾼들 입을 통해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불같이 일어나게 되었고 한 여름철이면 고박사 냉면집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서울에는 냉면을 즐겨먹는 사람들이 찾는 ‘냉면성지(聖地)’ 세 곳이 있습니다. 한여름이면 거친 이북사투리가 정겹게 들리는 충무로 대한극장 뒤 필동면옥, 을지로 3가 을지면옥, 장충동 평양면옥이 바로 그곳입니다. 세 냉면집은 같은 평양냉면이면서도 조금씩 맛에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세 집 모두 공통점이 있다면 냉면육수가 싱거운 맛입니다.
그런데 고박사 냉면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세집을 합한 것 보다 더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고 세 집을 합한 것 보다 더 많은 사람이 찾는 냉면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전국 음식점 이름에 ‘박사’ 칭호를 붙이는 유행을 낳기도 했습니다.
워낙이 이북음식인 냉면은 한여름 더위를 잊기 위한 여름철 음식이기도 하지만 흰 눈이 소복소복 내리거나  얼음이 꽝꽝 어는 긴긴 겨울밤 간식으로 먹으면 이빨이 딱딱 마주치며 속까지 얼얼해 오는 겨울음식인지라 차가운 냉면을 먹고 나서 뜨거운 국수 삶은 물-면수(麵水)를 먹는 것으로 언 몸을 푸는 음과 양이 조화로운 음식입니다. 그리고 냉면을 먹을 때는 고명으로 무김치도 얹어주는데 냉면에 무김치를 먹는 이유는 모밀이 가지고 있는 독성을 무가 해독하는 작용이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왜정시대 독립운동을 하다 붙잡혀 감옥살이를 하던 독립투사들에게 악랄하게도 왜놈들은 만주 너른 땅에 지천으로 깔린 모밀 한 가지만 먹였습니다. 그러자 얼마 뒤 모밀독이 온 몸으로 퍼지면서 다리가 붓기 시작했는데 무를 먹으면 거짓말 같이 부기가 빠졌던 것입니다. 물론 지금 냉면은 매일 세끼를 먹는다해도 절대 다리가 붓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 작가 이동진은 홍익대 미대, 한광고등학교 교사, MBC창작동요제 대상곡 ‘노을’의 작사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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