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일인 독재자의
급작스런 사멸은
그 구조에 익숙해 편승한
또 다른 독재를 낳았으니
이 나라 민주주의 역사는
고난의 길을 가야 했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 심우근 교사/
비전고등학교

단풍 물드는 10월이다. 산봉우리에서 슬그머니 내려온 단풍이 도시 가로수까지 번졌다. 같은 종의 나무라도 자신만의 색으로 다르게 물드는 단풍, 형형색색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니 더욱 아름답다. 민주주의도 이럴 것이다. 사람마다 얼굴 다르듯 느낌과 생각이 다르고 행동도 다르나 서로 어우러져 소통하고 인정하면 아름다운 세상이 될 터이다.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이즈음 10월이면 생각나는 사건들이 있다. 10월 유신과 10·26, 둘 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이다. 지금 그의 딸이 현직 대통령이다 보니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공과를 평가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다보니 거꾸로 박정희 전 대통령 찬양 일색 사업이 횡행하고 있다. 짧은 이 글에서 다루기 적절하지 않지만 간단히라도 따져볼 일이다. 과연 박정희 평가는 제대로 했는가? 미진하거나 못했다면 그 까닭은 무엇인가? 지금까지의 평가는 어떤가?

박정희 평가는 크게 둘로 갈린다. 공을 앞세우는 평가는, 비록 군사쿠데타로 집권했고 장기 독재를 했지만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세워 중화학공업을 중점 육성하고 새마을운동을 펼쳐 보릿고개로 신음하던 농촌을 살기 좋게 바꿔 오늘 날 이만큼 살게 해준 점이다. 논두렁에서 바지 걷어 부치고 모내기하며 농민들과 막걸리 함께 하는 서민 대통령, 친인척 일가들에게 엄격해 누구도 권력 언저리에 얼씬거리지 않게 하고, 권력형 부를 쌓지 않은 사심 없는 빛나는 영도자라는 인식이다. 과를 지적하는 평가는, 일제의 충복을 길러내는 만주군관학교를 혈서를 써가며 자원했고 일본 육사를 나와 독립군 토벌이 주요 작전인 만주군으로 복무했고, 4·19혁명의 결실인 제2공화국을 뒤엎고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민주주의를 짓밟았으며, 3선 개헌 ‘10월 유신’ 등으로 철권독재, 종신집권을 꾀했던 점이다. 비판자들과 정적들을 간첩으로 몰아 죽였으며, 몇몇 재벌들에게 특혜를 주어 재벌 중심 경제 판짜기로 지금과 같은 문어발 독점 기업 중심의 불균형 경제 구조를 고착화 시켰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과 세상 인식, 역사관으로 공을 앞세우든 과를 중시하든 평가한다. 그런데 평가의 기준이 어느 정도는 인류의 보편타당한 합의에 따라야 정당성을 얻고 설득력이 있을 터이다. 인류보편 기준이란 인간애를 넘는 만물 사랑, 생명 존중, 평화, 평등, 자유, 복지, 공정함, 약자보호, 타인 배려와 존중, 공존, 화합들이리라.

이 기준을 놓고 다시 박정희를 평가한다면 어떨까? 철권 독재통치에서 인간애를 찾기는 어불성설이다. 비판자, 정치 반대자들을 무고히 탄압하고 죽인 죄는 생명경시다. 박정권 기간 7·4남북공동성명의 성과가 있기는 하지만 ‘10월 유신’을 위한 정치목적이 컸다는 지적이 뼈아프고 그 뒤 남북 대치와 반목은 깊어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 권력자와 비권력자의 차별, 재벌과 주고받은 정경 유착의 결과 부의 불평등은 심화했고 정치목적으로 차별한 호남 홀대는 지금까지 깊게 상처나 곪아있다. 이유 같지도 않은 금지곡 남발로 노래할 자유, 심지어 머리 기를 자유, 짧은 치마 입을 자유조차 빼앗은 사례들은 지금 생각하면 코미디다. 독재 정권 아래 헌법상 자유권, 기본권은 장식이었고 시민의 자유는 통째로 침몰했다. 국가주도의 사회복지제도는 전무했고 박 정권 아래 공정함이란 그들만의 리그였다. 경제 약자들, 가난한 도시 서민, 농민들은 국가 경제 정책상 하위로 밀려 공순이, 공돌이, 농투성이로 저임금 저곡가의 반노동자, 반농민 정책에 휘둘리며 허울 좋은 고도경제성장의 그늘 아래 밑거름으로 썩어갔다.

부도덕한 퇴폐향락의 극치 주지육림을 떠올리는 궁정동 안가 새벽 연회 자리에서 심복 중 심복이 울린 총소리는 그의 독재를 마감시킨 청천벽력이었으나 장기 일인 독재자의 급작스런 사멸은 그 구조에 익숙해 편승한 또 다른 독재를 낳았으니 이 나라 민주주의 역사는 가시밭길을 헤치는 고난의 길을 가야 했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1909년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조선 침략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을 쏘았던 날이 10월 26일이다. 그날임을 김재규는 알고 총을 쏘았을까? 우연일 뿐인가? 역사는 필연이라 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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