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9월 하순
 

 

둔포·아산 이어주는 중요한 다리
곡류·신탄수급, 유지 기부금 출연

“경부선 평택역(京畿道 平澤驛)과 충남 장포 온양(忠南 長浦 溫陽) 사이를 통행하는 도중 가장 중요한 교량인 평택교(平澤橋)는 본년 칠월 중 홍수에 유실되어 목하 도선(渡船)으로써 겨우 인마를 통행케 하는 바, 원래 이 도로는 본군 서부용(西芙蓉) 양면과 충남 각지(忠南 各地)의 곡류 신탄과 기타 중요 물자를 평택에 운반하는 관계로 하여 실상 평택의 발전상 거대한 영향이 있는지라. 진위군(振威郡)에서는 이 사정을 도 당국에 구신하여 평택교의 가설하기로 알선한 결과 도 지방비 일만 일천 원(그 중의 약 2천원은 관계 지방 유지의 기부금으로 보충할 예정)의 예산으로 본월 하순부터 착수하여 시월 말경에 준공할 터이다”(동아일보, 1930년 9월 30일)

평택은 동으로는 안성, 북으로는 수원, 남으로는 천안과 이어지고 있다. 서로는 서해안과 닿아있지만 서남으로는 아산과도 맞닿아 있다. 근대기 들어 평택은 경부선으로 새로운 변화를 거듭했다. 경부선은 평택을 거쳐 성환, 천안으로 이어지지만 서면과 부용면(지금의 팽성읍)은 전통적으로는 아산과는 사람뿐만 아니라 물류 교역도 적지 않았고 평택의 발전에도 크게 영향을 주었다. 특히 농산물과 신탄薪炭 등 중요한 물자들이 아산을 통해서 적지 않게 수급됐다.

평택과 아산을 잇는 중요한 수단의 하나가 다리였는데, 바로 평택교平澤橋였다. 뿐만 아니라 평택교를 통해 아산 충남 지역 각지로 물산을 교류했다. 그만큼 평택교는 중요한 다리였다.

이 중요한 다리가 1930년 7월 대홍수로 인해 떠내려 간 것이다. 이로 인해 서면과 부용면 일대는 불편한 생활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동안 편하게 다리를 활용했지만 다리가 없어진 상황에서는 배로 사람과 물건을 실어 나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는 진위군청은 경기도 당국과 협의해 평택교를 다시 가설하기로 했다. 공사비는 1만 1000원으로 적지 않게 소요됐다. 이중 2000여 원은 지역 유지들의 기부금으로 충당됐다. 다리 공사는 9월 하순부터 진행돼 한 달 정도 걸려 10월 말경에 준공할 예정이었다. 평택교 준공과 관련해 신문기사가 게재됐는데, 다음과 같다.

평택과 둔포, 온양 사이를 통행하는 도로 중 주요 교량인 평택교는 지난 9월 하순부터 가설공사에 착수하였던 바, 드디어 10월 말경에 준공돼 일반 운수 교통이 복구됐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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