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평택시에는
질적으로 다른 인구들이
대거 유입돼 이전과는 분명
차별성을 가질 것이다.
그때를 꿈꾸는가,
변화에 대비하고 있는가?

 

 
▲ 김해규 소장
평택지역문화연구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택지역의 애정과 신뢰는 뿌리 깊다. 이 같은 신뢰는 정치성향으로 연결되어 지난 대선 때는 박근혜 후보 득표율이 전국 평균보다 높은 56.7%였다. 지역별로는 현덕면(68.8%), 신장1동(67.4%), 오성면(67.1%), 서탄면(67.0%)과 같이 농촌지역이거나 미군기지촌이었던 지역의 득표율이 월등히 높았다. 당시 필자는 몇몇 사람들에게 지지 이유를 물었다. 그 분들은 한결같이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고마움과 의리를 내세웠다.

 평택시민들의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감사와 의리는 1974년 ‘아산만, 남양만 방조제 준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실 방조제가 준공되기 전까지만 해도 평택지역의 생산력은 정말 보잘 것 없었다. 들은 넓었지만 농업용수가 부족했고, 침식과 포락, 수해와 한해도 매년 반복되었다. 희망 없던 평택시민들의 삶에 기적같은 일이 발생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아산만과 남양만 방조제 준공이었다. 하늘이 내린 기적 같은 변화에 평택시민들은 환호했다. 고마움과 감사함이 가슴 깊이 자리하게 된 계기다.

 몇 십 년 후 기적을 선물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대통령에 출마했다. 평택시민들은 주저하지 않고 은인의 딸에게 의리의 한 표를 던졌다. ‘국가의 지도자를 선출하는 데 개인적 고마움과 의리만 내세울 수 있느냐’는 주위의 비판도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근대시민혁명에 사상적 기초를 제공한 루소는 ‘사회계약설’과 ‘주권재민’을 주장했다. 정치지도자는 국민의 대리인에 불과하며, 국가의 존재 목적은 국민의 자유보장과 복리증진에 있다’라고 말했다. 루소의 사상은 대한민국의 헌법에도 명시되었고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원리가 되었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가들은 이 같은 사실을 잊을 때가 많다. 국민에게서 권력을 양도받은 권력자들(머슴)이 흡사 주인인양 행세하며 국민을 겁박하는 일이 발생하곤 한다. 역사적으로 이 같은 현상은 히틀러처럼 사상적으로 자기 최면에 걸렸거나 가치관이 왜곡된 사람, 자질과 능력이 부족하면서도 잘못된 신념을 가진 인물, 탐욕에 사로잡힌 사람이 정치권력을 획득했을 때 아주 나쁜 결과를 가져왔다.

 살펴보면 요즘 국가를 존폐의 위기로 몰아넣은 ‘박근혜 게이트’도 위와 같은 경우에 해당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몇 년 전 평택시민들이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정치지도자다. 드러난 내용만으로도 경악할 일인데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주인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두 아이의 아빠로 도무지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우리의 후손들이 이 시대의 지식인들, 이 시대의 어른들을 어떻게 평가할까 두렵다. 한 국가를 책임진 지도자가 국민이 공인한 공적시스템을 무력화하고 사적 네트워크와 사적 권력에 의존하여 국가를 농단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랍지만, 조폭들처럼 사적관계에 있었던 사람들과 모의하여 기업을 협박하고, 편의를 봐주고, 각종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고 또 그것을 자각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못해 참담하다. 그 참담함은 평택시민들 다수가 박대통령을 적극 지지했다는 사실 앞에 섰을 때 깊은 좌절과 회의로 다가온다. 그럴 줄 몰랐다는 변명은 우리의 낮은 정치의식을 드러내는 우매한 행위일 뿐이다.

그러면 우리를 참담함에 빠뜨린 정치적 성향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역사적으로 평택지역은 ‘변방(邊方)’이었다. 한 번도 중심세력이 자리 잡지 못했다. 더구나 근기(近畿)에 위치하여 중앙의 지배와 수탈만 당했다. 과거 드넓은 평택평야는 불모의 땅이었다. 그러다보니 인구가 매우 적었다. 평택지역의 인구증가는 조선후기 저습지가 간척되면서 급격히 증가했다. 근대 이후 철도가 건설되고 미군기지촌이 형성되면서부터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유입된 인구들은 신분적으로나 사회경제적으로 낮은 계층이었다. 대부분 교육수준도 낮았다. 일제강점기 평택역과 서정리역 중심부의 유지층은 친일적 성향이 강했고, 미군기지촌에 정착한 사람들은 사회구조상 친여, 친정부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정치적으로도 보수성향이 강했다. 이들의 보수적 성향은 제3공화국을 거치며 더욱 견고해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배고프고 고단했던 이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던졌고, 아산만, 남양만 방조제를 건설하여 천형의 땅을 옥토로 변모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 평택시는 21세기 들어와 가장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도시다. 삼선전자, LG전자를 비롯한 유수의 대기업 유치와 평택항을 중심으로 전개될 공업화에 대한 기대치도 매우 높다. 미래의 평택시가 공업과 물류, 교육과 문화가 조화를 이룬 현대화된 도시로 발전한다면 평택지역에는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인구가 유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과 문화, 의료 인프라 구축에 성공한다면 수도권 엘리트층의 유입도 기대할 수 있다. 이들의 정치성향이나 사회경제적 지위, 문화적 욕구는 농촌이나 근대도시의 상업인구와는 확연히 다를 것이다. 그 때가 되면 평택시의 여론주도층, 정치의식도 이전과 크게 달라질 것이다. 과거 은혜에 대한 감사함이나 의리로 투표하기보다 정치인의 자질이나 능력, 철학과 도덕성을 높은 정치의식으로 판단하고 투표할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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