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12월 2일
 

 

피해자, 서탄면 수월암리 박인호
6원 갈취, 평택경찰서 엄중 탐문

“경기도 진위군 서탄면 수월암리(振威郡 西炭面 水月岩里)에서는 지난 二일 오후 十一시경에 강도 二인이 출현하여 구타하고 금품 六원까지 강탈한 후 종적을 감추어버린 일이 있었다. 이제 그 자세한 바를 탐문한 바에 의하면, 진위군 서탄면 수월암리에 사는 박인호(朴仁浩, 37)는 (중략) 상투한 사람과 머리 깍은 두 청년이 달려들어 수중에 있는 돈을 전부 내어놓으라고 하므로 전기 박인호는 돈이 없다고 한즉 두 사람이 달려들어 격투한 끝에 현금 六원 十五전 중에 六원만 꺼내어 가지고 종적을 감추어 버리었다. 평택경찰서(平澤警察署)에서는 범인을 엄탐코자 대활동 중이라 한다”(동아일보,1932년 12월 9일)

강도 사건은 요즘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고 옛날에는 없었을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강도사건은 예나 지금이나 늘 우리 생활과 함께 있었다.
일제강점기 평택에서도 강도사건이 종종 발생했다. 1932년 12월 2일 밤 11시경 서탄면 수월암리에서 세 명의 강도가 출현했다. 이 마을에 사는 37세 박인호라는 주민이 수확한 고구마를 팔려고 했는데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2일 오성면 교포리에 사는 민의석을 찾아가 고구마를 팔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늦은 밤 11시경 자신의 집 근처인 수월암리에 이르렀는데, 세 명의 강도가 길을 막아섰다. 한 사람은 갓을 쓰고 있었고, 두 사람은 머리를 깎은 청년이었다. 이들은 박인호에게 돈을 내어 놓으라고 협박했다. 박인호는 가진 돈이 없다고 하자 청년 두 명이 달려들어 박인호를 때려눕힌 후 몸으류 수색 해 6원 15전을 찾아냈다. 이중 6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강도 일행 중 갓 쓴 사람은 아마도 망을 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강도사건이 알려지자 평택경찰서에서 출동했지만 강도 일행은 이미 종적을 감추어 버린 상황이었다. 경찰은 엄중 탐문을 했지만 강도 일행은 잡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기사에 의하면 두 개의 오류가 보인다. 첫째는 강도사건이 일어난 날짜인데, 처음에는 ‘2일’이라고 했는데, 기사 중에는 ‘지난달 8일’로 표기돼 있다. 신문 발행일로 보면 2일이 더 타당하다고 보여 진다. 두 번째는 강도가 2명이라고 기사 제목으로 했는데, 실제로는 한 명은 망을 보았고, 두 명은 돈을 빼앗은 3명의 강도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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