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가
지속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새로운 세상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지속가능한 농사는
무한 경쟁이 필요치 않다.
협동과 연대로 농촌공동체를
유지 발전시켜야 한다

 

▲ 한도숙 고문
전국농민회총연맹

지금 우리는 격동의 병신년을 보내고 있다. 두 달이 넘는 동안 우리사회의 요동치는 모습에서 우리가 한반도를 유지하며 살아온 내력을 가슴 뜨겁게 느낄 수 있었다. 200만이 넘는 시민들이 분노로 밝힌 촛불은 이제 세상을 바꾸는 촛불로 승화하고 있다. 우리 평택도 예외는 아니어서 매주 촛불이 타오르고 있다. 특히 내일의 주인공인 젊은 청소년들이 촛불을 밝히는 것은 내일의 우리사회가 다른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근혜·최순실 그리고 부역세력 그들의 국정농단과 헌정유린은 국민의 분노를 촉발했다. 이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동안 후퇴해버린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의 회복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분노는 행동이 되어 촛불과 횃불로 타올랐다. 빛이 어둠을 몰아낸다는 촛불시민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대한민국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명백히 못 박고자 나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 대안 세상에 대한 고민도 싹터 올랐다. 최순실과 그의 부역자들이 보여준 갑질의 절정을 보면서 세상이 극도로 불평등하며 주권마저 빼앗긴 세상이란 것을 눈치 챈 것이다. 이제 촛불을 들고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음을 대통령과 최순실과 그 부역자 일당이 깨우쳐준 것이다.

부역세력에는 재벌이 있다. 이들은 그동안 성장 중심정책의 수혜자들이다. 공적재화를 사적소유물로 전환시키고자 박근혜·최순실의 부역자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그들의 신념은 신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는 무한 경쟁이며 강탈 구조다. 재벌뿐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구조가 무한 경쟁이며 강탈구조다. 연대나 협동은 이사회에서 빨갱이로 낙인찍힌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은 오로지 재벌이다. 재벌의 이윤을 위해 국가는 노동자들을 무장해제 시켰다. 재벌은 소비자들을 현혹하고 피를 빨아댄다. 그리고 재벌은 이 땅에서 농사를 몰아냈다.

1993년 우루과이 라운드는 우리농사에 광풍을 몰고 왔다. 재벌의 비교우위라는 무한경쟁논리로 농민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결국 농촌 인구는 급격히 감소해 200만이 채 남지 않았다. 그마저 65세의 고령이라 10년 후면 50만이 채 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농업총생산은 GDP의 1%에 불과하고 농가소득은 도시소득 대비 60%를 약간 웃돌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식량 자급률은 24%에 지나지 않아 농사로 국민들의 생활안정과 건강을 책임지지 못하는 그야말로 헛것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농민이 바라는 새로운 세상에는 농사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마침 헌법 개정에 대한 요구도 조심스레 펼쳐지고 있음을 보며 권력구조뿐 아니라 국민주권의 폭도 넓혀야 할 것이다. 국민주권속에는 ‘식량주권선언’이 있다. 이것은 단순히 농민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국민전체의 권한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식량주권’은 국민, 지역사회, 국가가 농민의 고유한 농업적 노동, 어업 그리고 생태적, 사회적, 경제, 문화적으로 그들의 고유 환경조건에 적절한 식량과 국토정책을 정의하기 위해 가지는 권리다. 이것은 식량을 생산하기 위한 진정한 권리를 포함하며 이는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영양가 있고 문화적으로 적절한 식량과 식재료 생산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이들을 지속가능하게 함을 의미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농민들의 식량주권 사수는 실로 만들어 내기 어려운 고독한 싸움이었다. 멕시코 칸쿤에서 이경해 열사가 “WTO Farmers kill”이라 외치며 자결했고 홍콩에선 한국농민들이 뜨거운 투쟁을 벌였다. 전용철이 경찰에 맞아죽고 백남기가 공권력에 목숨을 버렸다. 그럼에도 요지부동 정부의 농업 죽이기는 노골적으로 진행됐고 농촌은 쇠락의 길을 급속히 가고 있는 것이다. 쉽게 우리지역을 돌아보면 현상을 알 수 있다. 평택에는 농사가 없다. 당연히 농정도 없다. 개발이익에만 집착하여 자족도시는 꿈도 꾸지 못한다. 절름발이 사회가 돼 가는 것이다.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변화의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재벌의 이윤을 위해 우리농민들이 사라져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미래가 없다는 말과 같다. 농사가 지속가능한 사회는 소통과 협동과 연대가 가능 해진다. 서로가 돕고 나누는 가운데 평화가 만들어 진다는 사실, 그것이 평등한 사회의 튼튼한 밑바탕이 된다.

농사가 지속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새로운 세상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지속가능한 농사는 무한 경쟁이 필요치 않다. 협동과 연대로 농촌공동체를 유지 발전시켜야 한다. 그것은 국가의 정책보다는 지자체의 노력으로 풀어가는 게 수월하다. 기본소득 등 사회부조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개발과 농사가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지자체가 만들어내야 할 몫이다.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지역에서 소비되게 하는 것은 농산물 가격지지정책의 중요한 부분이다.

헌법이 식량주권을 명시하고 사회적  합의로 식량주권선언이 가능해지려면 지역의 농사가 살아있어야 한다. 농사가 무너지면 지역이 무너지고 전체사회가 무너진다. 사회적 변화 욕구를 거부하는 것은 역사의 몰이해에서 비롯된다. 시민혁명의 완수는 지역으로부터, 시민혁명의 완수는 식량주권 선언으로부터 시작하자. 식량주권 선언은 주권재민의 살아있는 다른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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