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孝’를 실천하는 마음으로 ‘부모를 대하듯’

무연고 사망자에 3년간 제사 지내
의료·환경 등 어르신 삶의 질 높여

 
노년의 삶은 어떤 식으로든 쓸쓸함을 동반한다. 특히 가족과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인 어르신들이라면 그 마음을 가히 짐작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르신들이 모여 함께 생활하며 주변에 가족 같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상주해 말벗도 하고 그들로부터 보살핌을 받는다면 그 외로움이 어느 정도 상쇄될 수는 있지 않을까. 비단 가족이 아니라 해도 현생의 인연으로 만나 노년을 함께 보내는 이들은 어쩌면 가족보다 더 뼈아픈 존재들일지 모른다.

원칙은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
“이곳에 계신 어르신들이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가족과 떨어져 있는 외로움입니다. 그래서 특히 가족이 찾아오지 않는 어르신들의 경우에는 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이 어르신들과 결연을 맺어 휴일이면 찾아와 말벗을 해드리게 하고 있지요. 제게도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 군대에 있을 때 형편이 어려워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막상 동기들 가족이 찾아오는 걸 옆에서 물끄러미 바라볼 때면 그 마음이 얼마나 외로웠는지…. 전 젊었을 때 느낀 거지만 나이가 들면 그 마음이 더 커지겠지요”
조당호(55) 원장은 전국적으로 다양한 노인관련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는 연꽃마을의 상임이사이자 평택시로부터 노인전문요양원을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사회복지는 물론이고 경영과 행정까지 다양한 공부를 하며 박사학위를 받기도 한 그는 전문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몸담아 온 불가의 가르침을 받들어 ‘효(孝)’사상과 어르신들의 복지에 관해 누구보다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치료가 필요한 어르신들은 따로 집중관리실에서 24시간 세심하게 살피고 있습니다. 또 모든 어르신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고 1년에 한번 개원 일에는 마을잔치 형식으로 이곳을 모두 개방해서 이곳의 삶을 보여드리기도 합니다. 요양원은 사회로부터 격리된 곳이 아니라 어르신들이 노년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하는 또 다른 삶의 공간이니까요”
항상 원칙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조당호 원장은 벽에 걸린 입소자 명단 가운데 치매나 우울증 등의 병명 부분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도록 가려놓고 꼭 필요한 직원들만 확인하게 한다. 단순한 병명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어르신들에게는 혹 치부로 여겨질 수도 있기 때문에 어르신들의 존엄성을 지켜드리고자하는 조당호 원장의 작은 배려다.

어머니 병수발로 출가 미룬 20대
“제가 연꽃마을 각현 스님과 인연을 맺은 지도 벌써 40년이 되었습니다. 15살에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갔다가 스님을 만난 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절 생활을 시작 했으니까요. 각현 스님을 따라 법주사에서 생활하며 출가 할 결심을 하던 차에 속가의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막막했지요.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전 그때부터 스님의 말씀에 따라 속가로 내려가 혼자 어머니를 돌봐야 했습니다”
조당호 원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잠시 말을 멈춘다. 20대 중반이었던 조당호 원장은 1년 반 동안 뇌출혈에 치매까지 찾아온 어머니를 보살피며 목욕은 물론이고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까지 혼자 도맡아야 했다.
“집이 무너지려니 한순간이더군요. 평소에 저를 극진하게 위하시던 어머니가 치매가 와서 전혀 달라진 모습으로 저를 대하시는 걸 보고 어린 마음에 상처도 참 많이 받았습니다. 당시는 어쩌면 그렇게 먹을 것도 없었는지, 1년이 넘게 병수발을 들다보니 집에 먹을 쌀까지 다 떨어지더라구요. 그래서 아침 7시부터 저녁 10시까지 공장에 나가 일을 하고 밤늦게 돌아와 그때부터 다시 밤새워 어머니를 간호하기 시작했지요”
어머니는 그렇게 몇 년을 계시다 운명하셨다. 너무 힘든 시절을 보내고 난 뒤라 돌아가시고 나면 홀가분할 줄 알았다는 조당호 원장은 그러나 막상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자 허전한 마음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고. 현재 연꽃마을에서 그가 하고 있는 ‘효’사상과 노인복지 사업은 어쩌면 자신을 극진히 사랑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더불어 젊은 나이에 병수발을 들며 보내야 했던 아픈 시간으로 인해 어르신들에 대한 생각이 오래전부터 남달랐기 때문은 아닐까.

무연고 사망자 장례도 3년간 치러
“이곳은 시립으로 운영되는 곳이기 때문에 간혹 무연고자 분들이 오시기도 하는데 그분들이 임종했을 때에는 직원들이 돌아가며 빈소를 지킵니다. 장례비가 조금 나오긴 하지만 그 돈으로는 턱없이 모자라기 마련이지요. 그래도 저와 인연을 맺었던 분들이니 그냥 보내드릴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그분들을 위해 돌아가신 후 3년 동안은 해마다 백중일인 7월 15일이 되면 제사를 지냅니다. 또한 임종직전에 있는 분들은 최대한 빨리 가족에게 알리고 병원으로 옮겨서 가족들이 어르신들의 임종을 지킬 수 있도록 하고 있지요”
조당호 원장은 현재 장안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강의하고 있다. 때문에 그의 제자들은 이곳에 와서 일을 하기도 하는데 스승의 가르침을 거울삼아 일을 배우고 있기에 조당호 원장은 스스로에 대해 교육자로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않는다.
“저희 요양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2010년에 실시한 장기요양기관(재가) 평가결과 상위 10%로 전국 랭킹 5위 안에 드는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됐습니다. 12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공간에 직원 74명이 어르신들을 보살피고 있지요”
아직까지는 이 직업이 3D 직종에 속한다고 말하는 조당호 원장, 그래도 지역의 사회복지를 앞당긴다는 자부심으로 일하는 직원들과 일에만 빠져있는 자신을 이해하며 긴 세월을 함께해준 아내에게 가장 고맙다고 말하는 그는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그중에서도 특히 노인복지에 관한 한 100점 만점에 99.99점을 받은 곳이 바로 평택시노인전문요양원이라며 활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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