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탈주민 정착 도울 거예요”

내 고향은 북한, 숨기지 않아
돈보다 사람 먼저, 봉사 체질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풍습을 가진 사람들, 그러나 서로 너무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 사람답게 살기 위해 목숨을 건 사람들, 아직도 많은 차별과 냉대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사람들, 그들은 바로 북한이탈주민들이다.

대학생, 호기심에 건넌 두만강
“대학교 1학년 때, 남한으로 치면 엠티라고 할 수 있는 ‘약초 동원’에 나갔다가 만난 아저씨한테서 중국에서는 개도 쌀밥에 고깃국을 먹는다는 말을 들었어요. 호기심이 생겨 그날 밤 바로 두만강을 건넜죠. 그땐 중국을 며칠만 구경하고 바로 돌아오려 했었거든요”
이윤희(41) 씨는 북한에서도 엘리트그룹에 속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의과대학을 다녔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당 비서로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어머니도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엘리트로 일반적인 북한이탈주민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았다. 그러나 갓 스무 살을 넘긴 여대생의 호기심은 무모하게 두만강을 건너게 만들었고 그날 이후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날은 금요일이어서 군인들이 모두 축구경기 보느라 정신이 없을 때였어요. 두만강은 보기에는 쉽게 건널 것 같았는데 막상 건널 때는 절벽에서 떨어지기도 했고 물살이 세서 한참이나 떠내려가야 했죠. 며칠 뒤 다시 돌아가려 했을 때는 경비가 심해 무서워서 도저히 갈 수가 없었구요”
이윤희 씨는 당시는 철이 없었다며 웃는다. 20대 초반에 중국으로 건너가 식당을 전전하며 숨어 지내다 간신히 교회 사람들의 도움으로 남한에 도착했을 때는 서른 살이 될 무렵이었다. 남한 생활 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남한에서 소개받은 말수 적은 남자와 결혼해 예쁜 초등학생 딸을 둔 평범한 엄마로 살고 있지만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때론 슬프고, 때론 그 무모함에 허탈한 웃음을 지을 때도 있다.

정체성 지키며 당당하게 살고파
“딸에게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북한사람이라는 걸 알려줬어요. 어떤 사람들은 아이에게 일부러 엄마의 고향을 알릴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리지만 전 아이에게 엄마의 정체성에 대해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더 엄격하게 가르쳤어요. 엄마가 북한사람이라 그렇다는 말 듣지 않도록 말예요. 어디에 있든 자존심은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윤희 씨는 북한은 외국이 아니라 한 민족의 땅이라고 강조한다. 전쟁에 의해 인위적인 선이 그어졌을 뿐인데도 남한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고 말할 때는 어떤 강인함도 엿보인다.
“지금도 인천공항에 처음 내렸을 때가 생각나요. 창문으로 내다본 남한거리는 참 멋있어 보였는데 통일 전까지는 이제 정말 고향에 갈 수 없겠구나 생각하니 갑자기 눈물이 나더라구요. 광주에서 처음 정착할 때는 이제는 혼자라는 외로움보다는 막연한 서러움이 더 컸던 것 같아요. 당시는 정착을 도와주는 곳이 없어서 혼자 모든 걸 헤쳐 나가야 했거든요”
이윤희 씨는 결혼 후 평택에서 살게 됐고 2009년부터는 국제대학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했다. 결혼이주여성들에 대한 복지문제가 대두되는 시점이었음에도 북한이탈주민들에 대한 복지는 여전히 전무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회복지를 공부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사회에 나가보니 북한이탈주민의 벽은 높기만 했다고 회상한다.

북한이탈주민 정착 위해 봉사
“세상의 벽을 깨닫고부터는 더 이상 어디에 속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냥 내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이탈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죠. 북한이탈주민이 있다면 감옥에도 가고, 부부싸움을 한다는 전화를 받으면 자다가도 달려가고, 지금은 경기남부하나센터 정착도우미로 활동하며 봉사하고 있죠”
이윤희 씨는 봉사가 자신에게 가장 맞는 일이라며 활짝 웃는다. 특히 북한이탈주민들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치유가 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는 만큼 상담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전국구로 활동하며 북한이탈주민들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녀는 얼마 전 통일부 장관상이라는 큰 상을 받기도 했다.
“예전에는 북한사람들이 배가 고파서 남한으로 건너왔는데 지금은 이주개념이 더 큰 것 같아요. 그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제가 해야 할 일이죠. 돈보다는 사람이 먼저인 세상에서 사람구실을 하며 살고 싶어요. 그런 제 마음을 이해하고 묵묵히 응원해주는 남편에게 항상 고마워하며 살고 있죠”
새롭게 남한에 정착하는 북한이탈주민들은 자신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윤희 씨,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하루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그녀는 먼저 온 북한이탈주민들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다보면 언젠가는 사람냄새 나는 세상이 되지 않겠느냐며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한참동안 고개를 끄덕인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