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1월 18일

 

우편물·신문 10일간 모아뒀다 배달
주점·이장에게 전달, 분실사고 잦아

“振威郡 松炭面 西井里郵便所에서는 配達이 怠慢함으로 地方人士의 非難이 藉藉하다는 바, 他 配達物은 勿論이요 時間을 다투는 新聞도 或 一週日 乃至 十日分式 모아준다는 바, 그것도 直接 本人에게 傳하지 않고 或은 人便 또는 區長家 及 其他 面所在 酒店에 두는 故로 紛失되는 것이 不少하다고”(동아일보, 1926년 1월 18일)

요즘 재미있는 광고 하나가 우리를 즐겁게 하고 있다. 바로 ‘배달의 민족’이다. 이 광고는 우리 한민족이 ‘배달민족’이라는 자부심(?)에 착상을 해 만든 광고인데, 이 광고를 볼 때마다 역시 우리 민족은 역시 ‘배달配達’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전에 들었던 일화다.

우리나라 대기업이 유럽에서 대성공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배달配達’을 잘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성업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택배사업宅配事業’이다. 때로는 탈도 많고 말도 많지만 택배도 배달配達이라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다. 택배가 우리의 일상생활로 자리매김한 것도 이미 오래된 일이다.

배달은 무엇보다도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돼야 한다. 그럼에도 종종 제대로 배달되지 못해 소송이 걸리기도 하고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지금이야 배달하면 음식이나 치킨 주문이 대부분이지만 1920년대만 해도 ‘배달’은 집배원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집배원은 미리 할당받은 담당 구역의 우편물을 수집하고, 도착한 우편물을 표기주소지表記住所地에 배달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때문에 배달은 집배원의 생명과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1926년 1월에 아주 게으르고 태만한 집배원 있었다. 바로 서정리우편소에 근무하는 집배원이었다.

이름은 밝히지 않고 있지만, 이 집배원는 지역 인사들의 비난이 자자할 정도로 근무태도가 엉망이었다. 일반 우편물은 물론이고 최신 소식을 전하는 신문도 제대로 배달하지 않았다.

신문을 1주일 내지 10일간 모아 뒀다가 배달했다. 그나마도 제대로 전해주지 않고 다른 사람을 통해 전달하거나 마을 이장에게 맡겼다. 심지어는 주점에 두고 가버리는 일이 많아 우편물이 분실되기도 했다.

요즘 같으면 당장 퇴출감이지만 당시에는 비난 속에서도 잘 지냈던 것 같다. 비난을 받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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