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내려놓은 뒤 마음이 편해졌죠”

자활센터에서 새로운 도전 기회 얻어
열심히 사는 모습으로 희망 전하고파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것은 분명 두려운 일이지만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두려움이 조금은 덜 할 수 있다. 함께 한다는 것, 서로를 배려하고 마음을 나눈다는 것은 신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른다.

50대 초반에 모든 것을 잃다
“평택에서 시내버스 운전도 했고 개인택시도 13년을 했어요. 그런데 믿었던 사람 때문에 2억 원이라는 큰돈을 잃고 난 뒤에는 개인택시도 팔고 집도 저당 잡히고, 모든 것이 한순간이었죠. 2년 동안은 속상한 마음에 매일 술을 마셨는데 어느 날 직장암에 걸렸다는 소식까지 들었을 땐 정말 살고 싶지 않더라구요”
정용식(58) 사회적기업 차오름협동조합 부이사장은 지난 이야기를 떠올리다 자주 말문을 닫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처가 많이 아물기는 했으나 입 밖으로 꺼내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아내는 내게 왜 그랬느냐고 한 번도 묻지 않았지만 그 마음을 잘 알기에 미안한 마음이 더 컸어요. 죽으려고도 했지만 아이들이 아직 어리니 차마 그럴 수도 없었구요. 누구와 어울려도 돈이 필요했으니 친구를 만날 수도 없었고 가장이라는 책임이 있으니 힘들다고 마냥 집에서 놀 수도 없었죠. 그땐 정말 막막했어요”
정용식 부이사장은 5년 전에 직장암 수술을 했다. 5월에 수술을 한 그는 몸을 채 추스르기도 전인 9월, 인근 주민센터에 가서 도움을 청했고 그곳에서 자활센터를 소개받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선택했던 자활센터에 다니는 동안 그는 차마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했고 밖에 나갈 때도 오랫동안 모자와 마스크를 눌러쓰고 어두울 때만 다녔다고.

친환경세차장 ‘회오리’로 재기
“처음에는 그곳에서 출장세차를 시작했는데 1년도 안 돼서 우연히 출자금만으로 창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가진 것 없는 제게는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주신 기회였죠. 자활센터 분들과 함께 하는 친환경세차장이었는데 큰돈은 못 벌어도 다시 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했어요”
정용식 부이사장은 현재 합정동 쌍용자동차대리점 뒤편에서 친환경으로 세차하는 ‘회오리세차장’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다. 차 한 대당 물 2컵 정도를 사용해 친환경세제로 수작업 세차하는 회오리세차장은 그를 비롯해 자활센터에서 재기를 꿈꾸는 3명의 생계를 책임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적자였던 세차장이 4년이 되어가는 현재 어느 정도 정상궤도에 오른 것은 그가 세차장에 갖는 책임감의 정도를 방증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에는 더 열심히 벌려고 노력했고 힘들어도 더 열심히 뛰어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는데 병이 생긴 뒤부터 그런 욕심은 내려놓았어요. 지금은 수입이 적어도 큰 욕심이 없으니 마음이 참 편해지더라구요. 적게 버는 가장이라 가족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크지만 살아오는 동안 지금처럼 마음이 편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정용식 부이사장은 현재의 벌이가 얼마정도 되느냐고 묻자 예전에 자신이 쓰던 용돈 정도라며 웃는다. 그리고 자활센터에 다니며 가진 것 없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동안 그 사람들에게서 따뜻한 마음과 정을 느끼는 일이 많아졌고 그로 인해 위로받는 일도 많아졌다고 털어놓는다.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가장
“자활센터가 없었다면 저는 지금도 소외계층으로 살고 있었을 거예요. 예전에는 돈 때문에 힘들었는데 막상 모든 것을 잃고 난 뒤에야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마음이 따뜻하고 순수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죠. 마음도 편하고 일도 있으니 지금 심정이라면 조금 더 오래 살아도 될 것 같아요”
정용식 부이사장은 자활기업의 대표 자격으로 이따금 자활을 꿈꾸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의도 한다고 말한다. 그의 강의 내용에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 모든 것을 잃고 바닥에서부터 다시 일어나 살아가는 이야기, 함께 해주는 자활센터에 대한 고마움도 포함돼 있다.
“아들 둘 모두 공부를 참 잘 했는데 학원도 제대로 못 보냈다는 생각에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도 두 아이들 모두 열심히 노력해서 큰 아이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 갔고 둘째는 수원에 있는 마이스터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큰 기업에 공채로 들어갔으니 더 바랄게 없죠. 아직도 고생만 하는 아내에게는 늘 미안하지만 그건 살면서 두고두고 갚으려구요”
아들들이 서로 우애 돈독하게 지내고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가족에 대한 이야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정용식 부이사장, 그의 이야기 속에는 힘든 시간을 묵묵히 헤쳐 나가야 했던 한 가장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잠시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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