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행복한 도서관 만들어야죠”

도서관과 함께 한 24년 보람 커
성숙한 나이 듦에 대해 고민해


 

 

 

앎은 삶을 바꾼다. 누구든 배움의 의지만 있다면 앎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천국,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기회가 제공되는 곳, 지역의 거점으로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곳, 지친 영혼의 안식처가 되는 곳, 그곳은 바로 ‘도서관’이다.

시골초교, 아련한 도서관의 기억
“덕유산 자락, 작은 마을 주민들이 먼 길을 가야하는 자녀들을 위해 사비를 털어 땅을 사서 초등학교를 지었어요. 그 작은 학교가 제가 다닌 시골학교죠. 어릴 때부터 창고를 개조해서 만든 작은 도서관에서 책 읽는 걸 좋아했어요. 지금도 눈을 감으면 창문으로 들어온 쪽빛과 삐걱거리던 마루, 빛 위로 떠다니던 미세한 먼지, 약간의 곰팡내 비슷한 책 냄새가 아련히 떠오르곤 하죠”
평택시립도서관 본관 운영을 총괄하는 평택운영담당 유현미(47) 사서는 도서관과 함께 한 세월이 어느새 24년으로 접어든다며 미소 짓는다. 사서라는 직업에 대해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던 때부터 사서를 시작했고, 평택시립도서관이 개관하던 초창기부터 근무를 시작했으니 그녀는 평택시 도서관의 살아있는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가 대학 들어갈 때만 해도 도서관학과가 많지 않았어요. 대학에서 도서관에 대한 가치와 역할을 배우는 동안 도서관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됐죠. 지금은 좋아하는 일과 직업, 삶의 가치를 병행할 수 있으니 제겐 최고의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유현미 사서는 행복한 직업을 가졌음에도 이따금 사서와 공무원 사이에서 정체성을 고민한다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학교에서 배운 도서관의 가치와 원칙, 사명감에 대해 떠올린다고 말한다.

언제나 되새기는 도서관의 가치
“도서관을 독서실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주민 커뮤니티 공간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영혼의 안식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요. 시민들이 생각하는 도서관의 모든 역할을 충족시키기엔 현실적인 간극이 크죠. 그 간격을 사서들이 메워야 하는데 그 일이 쉽지는 않아요”
도서관은 이제 시민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누군가는 도서관에서 하는 프로그램은 왜 돈을 받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유현미 사서가 생각하는 도서관은 돈이 없어도 누구나 책을 볼 수 있는 곳, 빈부격차 없이 누구나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지인들은 제 두 아들을 도서관이 키운 아이들이라고 말해요. 매일 도서관에 와서 놀았죠. 사교육 없이 도서관 프로그램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는데 그래도 불안하지 않았어요. 책만 충분히 읽어도 잘 자랄 수 있을 거라고, 책이 가진 치유의 힘, 타인에 대한 공감의 힘, 이야기가 가진 힘, 책이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이 있었으니까요”
유현미 사서는 어린 시절 읽을 책이 없어 시골집에 굴러다니던 <새농민>을 닳도록 읽었고 그 모습을 본 아버지는 <어린이 새농민> 정기구독을 신청 해주셨다고 말한다. 한 달에 한번 손님처럼 찾아오던 그 책은 어린 시절 누렸던 지적 사치이자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던 행복한 추억이다. 그녀가 두 아들에게 축구와 관련된 정기간행물을 흔쾌히 구독하게 해준 것도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서였다고.

아버지에게 배운 아름다운 삶
“요즘은 종종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하곤 해요. 순하게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성숙하고 아름답게 나이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하죠. 그건 아마 아버지의 영향도 큰 것 같아요. 아흔이 다 되신 아버지는 얼마 전까지 3권의 책을 내셨는데 모두 자식들에게 주는 글들로 채우셨죠”
유현미 사서의 부모님은 딸 여덟에 막내로 아들 하나를 두었다. 그중 일곱째 딸인 그녀는 부모님을 진심으로 존경한다고 말한다. 재수하려면 고향에 내려와 소나 키우라는 아버지 말씀에 놀라 도망치듯 고향을 벗어났고, 가고 싶었던 국문학과 대신 실용적인 도서관학과에 원서를 냈지만 돌이켜보면 고향의 부모님이 자신의 뿌리였음을 절절히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도 부모님에게 많은 걸 배웠어요. 지금도 배우고 있고요. 적당한 무관심 덕분에 자식들이 삶의 중요한 결정들은 스스로 할 수 있었고, 대신 열심히 사는 모습으로 자식들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셨거든요. 언젠가는 아버지가 계신 덕유산 자락으로 돌아가 도서관장을 하며 책과 함께 지내고 싶은 게 제 꿈이죠”
어린 아이들이 학교가 끝나면 도서관에 가서 놀고, 도서관을 충분히 경험하며 자랄 수 있기를 바란다는 유현미 사서, 도서관에 대한 시민들의 피드백이 큰 힘이 된다는 유현미 사서는 아버지가 남긴 세 번째 책 <나무 심는 마음>이라는 제목처럼 후대를 위해 한그루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도서관과 함께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며 활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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