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깃 앞섶에 가득한
설빔을 주체할 수 없음에도
아버지께서 지목해 주신 댁을
모두 들러야 했기에 행복한 마음으로
세배를 다니던 기억이
오늘 나의 마음속
자양분이 되어 녹아있다

 

▲ 권혁찬 회장
평택문인협회

새로운 한해가 시작 되었다. 한해 첫날이 우리가 정한 이른바 신정 명절이다. 그런데 아직도 내겐 신정의 의미가 매우 무색한데 아마도 우리 민족 대부분은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설로 명명된 구정을 쇤다. 며칠 전 우리 설 명절이 지났다. 아들·조카·손자들의 세배를 받으며 덕담과 온정이 오가는 시간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화목이라 하면 이러한 시간들의 집합을 말함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데 명절에 반드시 참석했어야 할 한 사람이 참석하지 못했다. 바로 우리 집안 맏며느리였다. 한달 전 출산을 하고 산후조리중이기 때문이다.

다음날 서둘러 채비를 하고 아들네 아파트를 향해 차를 몰았다. 말하자면 손자에게 세배를 받으러 가는 길이다. 오늘은 세배를 받으러 가지만 앞으로는 손자가 내게 세배를 하러 올 것이다. 아마도 무한한 세월들이 그렇게 이어지리라 믿으며 정이란 오고 간다는 말처럼 정을 싣고 달린다. 

아들 내외는 지난달 손자의 기쁨을 안겨주었고 이어서 오늘은 며느리 품에 안긴 채 엉거주춤 세배 의식을 치루는 손자의 모습에 흐뭇한 마음으로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다. 가정의 화목이 만사를 형통하게 한다는 진리를 모르는 이는 없다. 그리고 실천해야 한다는 이유를 모르는 이도 드물다. 그러나 애써 연출해야 할 이유도 없는 가정의 화목이란 참된 배려의 삶 그 자체라 생각한다.

유년시절, 아버지께서는 설 명절을 맞이할 때마다 세배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집안 어른부터 차례로 그 의식을 가르치게 하시고는 친척이 아닌 동네 이웃 어른을 찾아서도 세배를 드리고 올 것을 명하셨다. 아버지의 명을 거역할 수 없는지라 주춤거리는 발걸음 속 반 쯤 기어 들어간 목소리로 세배를 올리러 왔다는 첫마디가 끝나기도 전에 어르신의 칭찬이 나의 마음을 안도시키던 기억이 역력하다.

설 차림 음식이며 각종 한과 등을 한 아름 안겨 주시고는 덕담을 한줌 더 얹어 주시던 그때의 미소를 아직도 기억한다.

자연스레 예절을 가르치고 몸소 체험하도록 인도해 주신 부모님은 지금 하늘에 계시지만 그 온정만은 영원히 우리 집안에 깃들어 있는 듯하다. 이어받은 화목과 배려의 온정이 오늘날 나의 형제자매 그리고 내 가정과 아들·딸들이 유복할 수 있는 이유라고 굳게 믿는다.

앞으로도 이러한 인정이 무한히 이어지기를 갈망하는 마음이 더욱 각별 했기에 손자에게 세배를 받으러 가는 길 또한 남 다른 축복이라 생각했다. 예로부터 집안에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아야 가정이 번창 한다고 했다. 손자보다 며칠 늦게 막내 남동생의 조카딸 미정이도 예쁜 공주를 낳았다.

동생과 제수씨도 입이 귀에 걸렸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었다는 세월 탓도 잊은 채 말이다. 그리하여 외손자 승훈이는 큰 형이 됐고 내년에는 드디어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인생의 시계는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란 평범한 진리를 이제야 좀 알 것 같은 날들이다.

지난달 평택 문인협회 회장으로 당선되던 날 우리 온 가족은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누구나 그러했겠지만 우리가족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가족모임의 구심적 역할로 모임이 있을 때 마다 나의 상황을 알려 주었고 누구 하나도 소외됨 없이 하나같은 마음들이었기에 더욱 기뻐했을 것이라 믿는다. 

손자에게 세배를 받으러 가는 초심으로 봉사하리라 다짐해 본다. 이 또한 이 시대에 내가 맡아서 장식해야할 가족과 사회의 사명 같은 몫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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