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4월 16일

 

 

신 교사 건축으로 400여 원 부채 안아
경성 제일류 기생과 가객 초빙해 7일간

“기보와 같이 평택 유지자 모모의 발기로 원 사립학교 동명의숙(東明義塾) 채무를 환상하기 위하여 기생연주회를 개최하는데, 본월 십육일부터 이십이일까지 흥행할 예정이며, 장소는 약 일천 평의 공지를 이용하여 임시극장을 건설하고 경성 제일류의 기생 이십명과 명창 박춘재 일행과 여배우 등을 불러다가 각종 연예를 흥행할 터이라더라”(매일신보, 1917년 4월 1일·14일)

요즘을 ‘매스 미디어 mass media’ 또는 ‘매스 커뮤니케이션 mass communication’ 시대라고 한다. 매스 미디어는 불특정 다수인 대중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매개적인 기술 수단이고, 매스 커뮤니케이션은 이를 통한 대중전달 과정 또는 사회현상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볼거리가 산재하고 있다. 신문·잡지·영화·라디오·TV·인터넷 등 무궁무진하게 널려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과학과 IT의 발달로 때로는 우리를 혼란하게 한다.

1960~70년대만 해도 천막극장은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을 모아 놓고 볼거리를 제공했다. 필자 또한 이때 천막극장을 쫓아다녔던 기억이 있다. 마을에서 가장 넓은 곳에 천막을 치고 영사기를 돌리던 그런 시대였다. 몰래 들어가려다가 잡혀서 혼나곤 했던 시절이었다.

그렇다면 1910년대는 어떠했을까? 지금처럼 볼거리가 다양하지 않았던 시기, 이때는 활동사진을 보여주곤 했는데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인기였다. 활동사진은 아니더라도 기생들의 공연 역시 대단한 인기였다. 동네 사람들이 다 몰려가는 기생연주회.

1917년 4월 16일 평택에서 기생연주회가 대규모로 개최됐다. 그 이유는 사립 동명의숙 부채 상환을 위해서였다. 동명의숙은 1907년 진사 김춘희가 진위군 병파면 조개터(현 합정동)에 설립한 근대적 서당이었다. 1917년 공립보통학교로 변경되고 교사校舍를 새로 건립하고 4월 1일 신학기에 이전 개교했다. 그런데 학교 건물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400여 원의 부채를 안게 됐다. 부채를 갚을 방법을 마련하지 못하자 유지들은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경성(현 서울)의 유명한 기생과 가객을 초빙하기로 했다. 기생연주회를 개최해 그 수익으로 부채를 갚고자 한 것이다. 경성에서 제일류의 기생 20명, 명창 박춘재 그리고 여배우까지 초청하기로 했다. 그런데 공연장이 문제였다. 1000여 평에 달하는 공터를 이용해 임시극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4월 16일부터 22일까지 일주일간 각종 공연을 가졌다.

가객으로 온 박춘재는 한말과 일제강점기 활약한 경기·서도 소리 명창이며, 재담의 1인자였다. 평택지역민은 흥겨운 기생의 공연으로 즐거운 일주일을 보냈고 학교 부채를 갚는데도 일익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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