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어머님이 우리 집 중심이죠”

따뜻한 가족, 함께여서 행복
부모님 모시는 건 당연한 일

 

 

 

“몸의 중심은 심장이 아니다/ 몸이 아플 때는 아픈 곳이 중심이 된다/ 가족의 중심은 아빠가 아니다/ 아픈 사람이 가족의 중심이 된다” - 박노해 ‘나 거기 서 있다’ 중에서 -

치매 시어머니와 8년 동거
“대부분 치매라고 하면 가족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머니는 다행히 얌전한 치매에 걸리셨어요. 식사하고 주무시는 것 외에는 특별히 돌출행동을 하지 않으시거든요. 고맙고 감사하죠. 때 맞춰 식사 차려드리고, 씻겨드리면 나머지 시간은 거의 주무시는 시간이에요”
지난해 9월 전국에서 20명에게 수여하는 현죽효행상을 수상한 이순덕(52) 씨는 8년째 치매를 앓고 계시는 올해 여든여덟 된 시어머니와 현덕면 대안리에서 동거 중이다. 덤프트럭을 운전하는 남편과 스물아홉이 된 큰 딸, 열다섯 살이 된 사춘기 막내딸까지 이 다섯 식구의 생활은 오롯이 치매 시어머니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씀은 잘 안하셔도 매일 집에서만 누워 계시니 얼마나 답답하시겠어요. 그래서 온양이나 수원에 있는 시누이 집에 갈 때는 어머니도 함께 모시고 가죠. 딸들도 보시고 바깥풍경도 구경하시라고 말예요. 한 번도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낸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가족이니까 가족과 함께 살아야죠”
이순덕 씨는 남편과 결혼해 신혼살림을 차린 지 1년 만에 시댁으로 들어가 둥지를 틀었다. 마흔 다섯에 풍을 맞아 평생 왼쪽 다리를 끌고 다니셔야 했던 시아버님은 십년 전 여든의 나이로 돌아가셨고, 그 충격 때문이었는지 자꾸 옛날이야기를 꺼내던 시어머니는 결국 7년 전에 치매 판정을 받았다. 

부모의 가장 큰 가르침 ‘孝’
“요즘은 시부모와 함께 사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모시고 산다하면 다들 특별하게 보나 봐요. 그런데 예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모를 모시고 살았잖아요. 저도 그냥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친정 부모님도 항상 저를 볼 때마다 시부모님께 잘 하라고 당부하셨죠. 우리 때는 효도를 가장 으뜸으로 치던 때였으니까요”
이순덕 씨는 평택민요 중에서도 어업요로 잘 알려진 이종구 명인의 막내 외동딸이다. 그녀의 고향이기도 한 현덕면 신왕리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아버지와, 아버지가 잡은 고기를 내다 팔았던 어머니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던 그녀는 자신에게 효도를 강조하던 부모님을 떠올리다 순간 눈시울을 붉힌다. 이제는 두 분 모두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분들에게 받은 사랑은 지금도 타인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살면서 크게 힘들었던 기억은 없어요. 늘 어머님이 하자는 대로 하며 살았거든요. 어머님이 건강하셨을 때도 뜻을 어기지 않으려고 했죠. 간혹 속상한 일이 있으면 그냥 동네 한 바퀴 휙 돌아오곤 했고요. 지금은 누워계시기만 하는 어머님이 측은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가족들이 모두 직장생활을 하니 오전 6시면 어머니를 깨워 함께 식사하고, 저녁에도 부리나케 퇴근해서 저녁준비하고 씻겨드리는 게 제 일과죠”
낮에는 그나마 간병인이 도와주지만 바쁜 직장생활을 마친 뒤에도 어머니에게 식사를 챙겨드리고 변을 치우는 것은 늘 그녀의 몫이다. 긍정적인 사고와 여간해서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 탓인지 그녀의 얼굴은 시종일관 편안해 보이지만 그런 모습 뒤에는 가족만을 위해 살아온 그녀의 남다른 헌신이 숨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가족의 힘으로 버틴 시간들
“남편과 오래 함께 살았지만 정말 착한 사람이에요. 지금도 늘 많이 도와주죠. 남편이 일 때문에 못하면 딸들이 할머니와 얘기도 하고 식사도 차려 드리고요. 그렇게 가족이 도와주니 가능했던 일이고 자식이 부모님께 해야 하는 당연한 일인데 너무 과분한 칭찬을 받는 것 같아 오히려 부끄럽네요”
이순덕 씨는 자신의 삶에 대해 후회하지 않지만 두 딸들만큼은 조금 더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자신은 항상 가족이 먼저라는 생각으로 하고 싶었던 일들을 뒤로 미뤘지만 두 딸들만큼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하며 살기를 바라는 엄마로서의 바람이기도 하다.
“우리 집의 중심은 어머니에요. 어머님이 심해지시면 가족들이 모두 힘들어지니까요. 어머님이 더 심해지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제 소망이요? 큰 딸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고, 작은 딸은 공부 열심히 했으면 좋겠고, 남편이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거죠. 그것뿐이에요”
아직 가족여행 한 번 가보지 못했다는 이순덕 씨, 어느 나라를 여행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스위스가 가보고 싶다고, 어떤 취미생활을 해보고 싶으냐는 질문에 형편이 나아지면 어린 시절의 꿈을 살려 ‘마미캅’에서 경찰을 돕는 활동을 꼭 해보고 싶다는 이순덕 씨는 이제야 생각난 듯 마음 속 이야기를 어렵게 꺼내며 조용히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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