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4년 반 만에 큰 아이가 태어났다. 임신기간 동안 아이의 이름을 정해두지 못했던 터라 갑작스럽게 작명(作名)하려니 당혹스러웠다. 아이를 갖게 된 것에 대한 감사함, 아이의 인생에 기(氣)를 넣어줄만한 이름, 살아갈 삶에 대한 기대를 함축한 이름, 너무 여성스럽지도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도 않은 이름. 몇 가지의 원칙을 정해 놓고 고민에 고민을 하였지만 마땅한 답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작명소로 달려가고, 사업을 시작하면서 회사 이름을 짓는 데 수 십, 수 백 만원을 지불하는 것도 이름이 갖는 중요성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이름만큼 지명(地名)이나 공공시설의 명칭도 중요하다. 사람의 이름에 그 사람이 살아갈 삶에 대한 기대를 담는다면, 지명이나 공공시설에는 지역의 역사성과 문화성, 주민들의 정서, 마을의 희망과 미래를 고루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근래 평택시는 택지개발, 산업단지, 공원, 도로 조성사업의 명목으로 다양한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택지개발사업은 날로 발전하는 평택시에 안정적이고 쾌적한 주거공간과 삶의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개발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점도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택지개발지구의 ‘명칭’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명칭’은 도시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서 도시의 역사성과 문화성, 주민의 정서에 부합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비전동 일원에 조성되고 있는 ‘소사벌택지개발지구’의 명칭은 지역의 역사적 정체성과 배치되는 것이어서 심히 우려가 된다. 이 문제의 핵심은 ‘소사벌’과 전혀 관련 없는 지역에 ‘소사벌’이라는 지명을 사용하였다는 점에 있다. 알다시피 소사벌은 평택시 소사동 남쪽에서 안성천까지 펼쳐진 들판을 말한다. 이 들판은 삼남대로가 지나가는 교통의 요지인데다, 정유재란의 소사벌대첩, 청일전쟁, 한국전쟁의 격전지이며, 대동법시행기념비와 같은 문화유산을 품고 있어 ‘소사벌레포츠공원’, ‘소사벌초등학교’, ‘소사벌단오제’처럼 상징성이 강한 명칭으로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특정 지명을 공공건물이나 단체의 명칭으로 사용하는 것과, 특정 지역의 명칭으로 사용하는 것은 ‘평택시청’에 ‘안성시청’이라는 간판을 다는 것만큼이나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특히 택지지구의 명칭은 조성사업이 완료된 뒤에는 지역이나 마을 지명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일찍이 소사벌택지지구의 명칭에 관해서는 2008년 6월 평택문화원 부설 향토사연구소에서 개최한 토론회를 통해서도 논의된 적이 있었다. 당시 기조발제를 했던 필자는 ‘소사벌택지지구’ 라는 명칭은 역사적 정체성을 훼손하는 행위이며, 대안으로 현 지구의 정체성을 살려 이곡(梨谷)지구, 주교(배다리)지구와 같은 명칭이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당시의 논의된 사항은 향토사연구소를 통하여 한국토지공사에 전달되었다. 요구를 전달받은 해당 기관에서는 당장 변경은 어려우므로 택지개발사업이 완료된 후 바꾸겠다는 구두(口頭) 약속을 하였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 뒤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이제는 완전히 ‘소사벌’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지명은 한 번 정해지면 쉽게 바꾸지 못한다. 한 번 정해 놓고 몇 년 사용한 다음에는 어느 새 역사성과 상징성이 덧입혀져 고유명사로 굳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소사벌택지지구’ 명칭 변경은 시급한 과제이다. 평택시와 정치권에서는 심각성을 인지하고 문제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촉구한다.

 

 

 


김해규 소장
지역사연구가, 평택지역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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