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문화예술 살리는 게 꿈이죠”
자연과 함께 하는 예술행사 많아야
춤과 함께 한 민속학, 배움 이어져
결핍이 없는 사람은 진정한 예술을 할 수 없다. 그것은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예술가는 그 결핍의 자리에 자신의 혼을 담아 무한한 예술의 아름다움을 창조해 낸다.
중학교 때 처음 배운 장구와 춤
“충남 보령이 고향인데 중학교는 서울에서 다녔어요. 그때 학교에서 농악을 접하고 장구를 배웠죠. 어느 날 친구를 따라 간 학교 앞 무용학원에서 우연히 선생님 눈에 띄어 잠시 무용도 배웠고요. 덕분에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을 때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직접 장구와 무용을 가르쳤죠”
정고을(55) 경기지역춤연구소장은 젊은 시절 안양·인천·용인 등지에서 학원을 운영하고 용인에 있는 용동중학교에서는 오랫동안 강사로 활동했다. 춤은 물론 기획에도 재능이 많았던 그녀는 2000년 문화관광부 지원을 받아 용인에서 물 축제를 시도했는데 당시 그녀가 했던 물 축제는 샛강 살리기의 일환으로 용인-안성-평택의 물길을 따라가며 소리와 바람으로 물을 맞이하는 퍼포먼스 공연이었다.
“어머니는 정월대보름날이면 길에 짚을 깨끗이 씻어 깔아놓고 그 위에 오곡밥과 돈을 던지곤 하셨어요. 어려운 사람이나 배고픈 짐승들에게 돈이나 음식을 나누고 베푼다는 의미였죠. 어릴 때부터 생명과 자연을 소중히 하던 무속 신앙을 자주 보고 자랐던 것이 제 춤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 같아요”
정고을 소장은 춤을 추는 동안 자연스럽게 여성운동, 환경운동에도 참여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녀의 춤이 지향하는 지점과 맞닿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1994년 창단한 고을무용단을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는 그녀는 대학에서 현대무용과 민속학을 각각 전공하고 무용학과 노인복지학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했을 만큼 학문연구에도 관심이 많다.
학문에서 더 큰 춤의 세상 발견
“민속학을 공부한 이유는 춤에서 다 표현해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어요. 외국인들과 퍼포먼스를 하는데 우리나라 전통을 제대로 알아야 더 잘 표현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러다 1998년부터는 안성향당무에 매달리기 시작했죠”
그녀는 자신의 스승으로 저명한 민속학자인 이병옥 교수와 경기도무형문화재 제34호로 안성지역의 전통춤인 향당무를 집대성한 유청자 선생을 꼽는다. 그녀는 지난 2월 27일부터 3월 1일까지 사이판에서 스승들과 함께 하는 ‘사이판 진혼제’를 개최하기도 했다. 사이판 진혼제는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돼 생을 마감한 한국인 6000여명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행사였다.
“진혼제는 육체와 혼이 분리되는 49제때 망자의 혼을 잘 달래서 저승으로 보내주는 의식이고 진혼무는 그것을 춤으로 표현하는 거예요. 1999년 씨랜드 참사 당시 유치원생들과 선생님들의 혼을 위로하는 ‘진혼제’를 주도했는데 그때 처음 진혼제라는 말을 썼죠. 지금도 당시 춤을 추면서 가슴이 많이 아팠던 기억이 나요”
씨랜드 참사는 당시 화성군에 있던 씨랜드청소년수련원에서 모기향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잠자던 유치원생 19명과 인솔교사 4명 등 모두 23명이 숨지고 6명이 부상당했던 대형 참사다.
떠나는 영혼 위로하는 ‘진혼무’
“난 평생 춤에만 매달려야 하는 운명이지만 평생 춤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없어요. 교육에도 관심이 많거든요. 지금은 이천에 있는 대안학교에서 아이들의 생활지도를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상처입고 외면 받는 아이들을 보듬으며 이년 정도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그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죠”
정고을 소장은 정교사 자격증도 소지하고 있는 만큼 이곳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한편 그녀가 하고자 하는 진혼무를 위한 자료수집에도 매진하고 있다. 진혼무에 대한 애정이 많은 만큼 그녀는 평택호를 중심으로 물길을 따라 이어지는 진혼무를 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친다.
“내 모든 춤은 흙·물·불·바람, 그리고 틈·터·틀이 주된 테마예요. 흙·물·불·바람은 자연을 뜻하고 틈·터·틀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비어있는 공간, 그리고 사람 사는 냄새를 의미하죠. 나이가 들면 그제서야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이 자연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데 예술이 사람들을 자연으로 끌어낼 수 있는 매개가 됐으면 좋겠어요”
지영희 선생을 위한 진혼제를 해보고 싶다는 정고을 소장, 현재 추진 중인 세계지역문화예술센터를 건립하면 실크로드 진혼제를 추진할 계획이라는 정고을 소장은 지역의 문화가 중앙의 문화가 될 수 있도록 앞으로 경기지역 춤 연구는 물론 지역사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연구를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한다. 그녀는 올해 12월경 한국소리터 지영희 홀에서 경기지역춤 발표를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