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시기상조라고
공개 천명했으니
누가 재단을 설립하자고
나설 것이며
어느 공무원이 이를
추진 할 것인가

 

 
▲ 이수연 전 부이사장
한국사진작가협회

평택시가 지난 달 민·관·기업이 신뢰와 협치協治로 거듭나기 위한 전략추진과제를 선정하고 지역사회 기반 융·복합형 거버넌스를 구축하기로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평택시 거버넌스 발전계획 최종 용역 연구발표회’를 가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거버넌스란 ‘사회 내의 다양한 기관이 자율성을 지니면서 함께 국정운영에 참여하는 변화 통치방식’을 말하는데 이런 특성 상 ‘협치’라고도 한다. 거버넌스가 필요한 것은 오늘날의 행정이 시장화, 분권화, 네트워크화, 기업화, 국제화를 지향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였기에 과거처럼 ‘통치’로서의 행정이 아니라 민간 부문과 시민사회를 포함하는 구성원 사이의 네트워크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시가 ‘행정 일방주의’ 대신 ‘행정 소통주의’를 지향한다는 의미이기에 대단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보도에는 없었지만 이날 발표회 마무리에 즈음하여 우리 공재광 시장께서 평택문화재단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전해 들었다. 골자는 ‘시·군 지자체에서 문화재단을 설립하려면 인구가 60만 명 수준은 되어야 하며 평택은 현재 평화예술의 전당이나 박물관 건립 등등을 추진하고 있어서 이런 하드웨어적인 일들을 마무리하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행정전문가인 우리 시장이 평택전반을 아우르는 정책적 판단으로 내린 합당한 발언이라고 믿고 싶고 그 발언의 밑바닥에는 그렇게 말한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예술인의 입장에서는 많이 아쉽다. 공직사회에서 수장의 발언은 곧 ‘결정’이기 때문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인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자신의 글에서 술회한 행정 경험에 의하면 ‘공무원들은 타고난 수비수로서 공격적, 자발적으로 일을 하는 경우가 없다’고 했다. 실무 국·과장 회의에서 자신의 계획을 말하면 빠짐없이 메모를 하지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실현할 수 없는 이유를 제시한다고 했다. 하지만 강력하게 ‘청장의 방침’이라고 하자 안 되는 이유만 말하던 그들이 잠시 뒤에는 할 수 있는 방안을 아주 상세하게 정리해서 보고해 놓는다는 것이다. 수직 위계사회인 공무원 세계라고 해도 그로부터 시간이 많이 흐른 이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 시장이 ‘평택문화재단을 빠른 시일 내에 출범시킬 수 있도록 계획을 수립하라’고 했다면 설혹 재단 설립의 법적기준이 인구 60만 명이라고 해도 어떻게든 가능한 방안을 찾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지자체 인구 60만 명’의 판단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평택시를 둘러싸고 있는 다른 지자체 중에 문화재단이 없는 곳은 우리와 안성뿐이다. 오산은 2012년 인구 19만 명 시절에 재단을 설립했고 이웃한 당진은 현재 인구가 17만 명, 아산은 34만 명이다. 같은 경기도 내에서도 군포는 올해 인구가 28만 명이고 하남이 지난해 20만 명을 돌파했을 뿐이니 설립 여부는 정책 결정권자의 의지에 달린 것 같다. 문제는 시장이 이를 시기상조라고 공개 천명闡明했으니 누가 재단을 설립하자고 나설 것이며 어느 공무원이 이를 추진 할 것인가이다. 

문화재단이야 말로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 팔 길이 정책’ 곧 대표적 거버넌스다. 당장 ‘우선사업’이라고 한 평화예술의 전당이나 박물관 건립이 그렇다. 건물부터 짓고 나서 나중에 어떻게 쓸지 고민할 것인가? 짓기 전에 시가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에 따라서 평택을 이해하고 그 시설을 실제 사용할 사람들을 참여시켜서 평택만의 공간을 창출해 내야 한다. 그래야 후회하지 않는다. 그 구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평택문화재단이다. 하지만 꼭 이것 때문만은 아니다. 화장실에까지 붙이는 ‘문화’를 이제는 ‘입으로만’ 외치지 말자는 말이다.

행정의 문화예술지원이 지금처럼 특정 소수의 문화예술인이나 단체에 국한하지 않고 시민 모두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바탕으로 존재하려면 문화재단이 절대 필요하다. 평택문화재단 설립은 시기상조가 아니라 만시지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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