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AI가 발생할 때마다
살아 있는 닭을 살처분 하는
현장에 나갔다는 것이다.
혹시 모를 감염을 막기 위해
주사를 맞고 약도 먹었다는 걸
이번에야 알았다

 

▲ 조민숙 시민
팽성읍 송화리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고 학창시절을 보낸 친한 친구가 있다. 얼마 전 그 친구 집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자주 만나 아이들 학원 정보도 듣고, 소소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 참 좋다.

그런데 어제 만난 친구가 느닷없이 남편 때문에 걱정이 많다고 한다. 난 웃으며 “바른생활 맨을 남편으로 둔 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웬일이니?”하자 친구가 눈물까지 글썽인다. 뭔가 심각한 일이 터진 건가 걱정이 됐다. 친구 남편은 9급 공무원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승진도 하고 자상해서 솔직히 많이 부러웠던 참이다. 요즘 제일 잘 나가는 공무원 남편을 둔 친구의 하소연이 내겐 와 닿지 않았다.

친구는 신랑이 자기편이 아니라 늘 남의 편이라서 속상하다고 한다. 내가 말했다. “남편이 자기편인 사람이 몇이나 되겠니? 남편은 남의 편 맞아” 그러자 친구가 “넌 몰라” 한다. 대체 내가 뭘 모른다는 건지.

사실 내 주위엔 공무원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눈이나 비가 쏟아진다는 예보가 뜨면 새벽이고 늦은 밤이고 뛰어나가 거리를 정돈해야 한단다. AI나 구제역이 발생하면 24시간 조를 짜서 상황실에서 밤샘 근무도 하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해서도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며 이동 검역소에서의 차량 소독도 공무원들이 한다고 한다. 난 정말 몰랐던 사실이다.

얼마 전에는 친구 남편이 시청에서 독감예방주사 접종을 챙겨줘서 맞았다고 하기에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남편은 그동안 매년 AI가 발생할 때마다 살아 있는 닭을 살처분 하는 현장에 나갔다는 것이다. 이때 혹시 모를 감염의 위험을 막기 위해 주사를 챙겨 맞고 약도 먹었다는 걸 이번에야 알았다고 한다. 살처분은 전문 업체 직원들만 하는 줄 알았는데 워낙 많은 닭들을 처리해야 하니까 공무원도 함께할 수밖에 없단다.

공무원들이 그런 일까지 하다니 나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친구 말로는 남편은 겁도 많은 사람이라는데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자신이 한심해서 오랫동안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평택은 산업단지와 주택단지 개발이 많아서 지역주민의 민원도 다른 시군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개발사업의 성격상 빠른 해결책이나 결말이 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어 민원인과의 대화도 쉽지 않을 것이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주민등록등본도 집에서 떼니까 주민센터 갈 일이 없어서 잘 모를 수 있지만 복지 분야 공무원들은 챙길 일이 너무 많다고 한다.

든든한 직장에 다니는 잘난 남편을 뒀다고 질투어린 이야기를 건넨 적도 많았는데, 말 수 적은 친구와 더 말 수 적은 친구 신랑은 그동안 어려운 내색 한번 하지 않아 잘 몰랐던  것이다. 매스컴에서 공무원 관련 이야기가 나올 때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공무원들이 그럼 그렇지”하며, 소리 높여 비난했었는데 말이다. 

공무원들은 번듯한 사무실에서 가만히 앉아 쉽게 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생각해보면 많은 시민들이 살아가는 큰 도시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공무원들이 정말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걸 생각해야 하는데 그동안 공무원들에 대해서는 너무 무관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은 원래 내편이 아니야. 네 신랑은 공무원이니까 시민 편이겠네. 너라도 칭찬해 주고 힘내라고 응원해 줘야지. 너라도 신랑편이 돼야지.” 

내 친구가 그제야 웃는다. 참 착한 내 친구, 그리고 더 착한 친구의 남편. 그래서 세상이 둥글둥글 잘 돌아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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