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의 SNS 언어는
은어, 속어, 비속어, 조어,
국적불명의 신조어까지 혼란스럽다.
그들은 음성언어와 문자언어를
비틀고 구부리고 부러뜨리며
언어문화를 만신창이로 만든다

 

   
▲ 김기연 전 교육장
경기도평택교육지원청

“낮말은 페이스 북이 듣고 밤 말은 트위터가 듣는다”고 한다. 이 말은 IT 강국다운 우리나라 생활문화의 한 단면으로 SNS의 일상성, 은밀성, 강한 전파성을 시사한다. 청소년들의 힘은 ‘손끝의 순발력’이라 하지 않았는가?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에메의 <생존의 시간 카드>라는 작품 속에서는 부자가 빈자에게 돈을 주고 시간을 사지만, 현실에서는 삼성과 애플이 만든 스마트폰이 공짜로 우리 시간을 빼앗아 가고 있다고 소설가 김영하는 일갈(一喝)한다.

그런가하면 세상의 정보가 광속으로 전파되면서 사회는 투명사회로 가고 있다. 그 배경에는 인터넷과 SNS가 자리한다. 구글은 이제 ‘글로벌리제이션’의 시대는 가고 ‘구글리제이션’의 시대가 왔다고 큰 소리 친다. 이 모두가 허풍이 아니라 현실이다.

사이버 페이스라는 새로운 공간을 체험한 N세대는 프로슈머의 역할을 톡톡히 해 낸다. 그들은 인터넷을 통해 문화의 소비자뿐만 아니라 생산자로 성장하면서 국가 간의 경계를 허물고 전 세계의 문화와 소통하는 통로역할을 한다. N세대는 영화, 음악, 패션, 게임 등에서 글로벌 문화를 형성하는데 주도적이다. 한류 열풍인 싸이의 말춤, 드라마, 치맥 등이 방증하는 사례다.

뿐만 아니라 웹진(webzine)은 청소년 글로벌 문화 형성의 도구로 기능한다. 웹진은 탈공간성과 비동시성으로 지리적 접근성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으며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정보를 송수신 한다.

이처럼 인터넷은 더 이상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삶 속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하지만 인터넷의 속성인 익명성 뒤에 숨은 악의적인 루머나 악플은 치명적이다. 또한 개인정보의 유출, 욕설과 비방, 사이버 폭력은 심각한 사회문제를 안고 있다.

청소년들의 SNS 언어를 보면 은어, 속어, 비속어, 조어, 국적불명의 신조어까지 혼란스럽다. 그들은 음성언어와 문자언어를 비틀고 구부리고 부러뜨리고 언어문화를 만신창이로 만든다. 이렇다 보니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에 이상 징후가 보이고 예후도 좋지 않다는 여론이다. 역기능의 산물인 조급성, 폭력성, 고립성은 ‘회복 탄성력’에 회의를 품게 한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는 인쇄매체인 독서를 통하여 건전한 가치관을 기르고 정신건강을 살 찌워야 하는 중요한 시기가 아닌가?

문학평론가인 김태환 서울대 교수는 인쇄매체의 깊은 가치와 영향력이 사라지는 가운데 “선지자의 시대는 가고 약장수의 시대가 왔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중문화가 이끄는 한류와 함께 활자와 연관된 지식문화도 세계인의 눈길을 끌게 해야 한다. 하지만 인문학에서 유행했던 ‘비동시성의 동시성’은 현재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청소년 문화의 기현상이다.

우리나라 청소년은 높은 성취도와 낮은 정의적 태도의 부조화를 보인다. 눈을 밖으로 돌려 보자. 빌게이츠와 마크 주커버그는 2년만 더 다니면 취득할 수 있었던 ‘하버드대 졸업장’을 왜 포기했을까? 그들에게 대학은 자신의 진로를 찾는 곳이었을 뿐, 진로를 보장해 주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서울대학을 중간에 포기한다고 하면 부모님들은 극렬히 반대했을지 모른다.

브라질의 소설가 파울루 코엘류의 ‘순례자’에 보면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항구에 머물기 위해 만들어 진 게 아니다’라는 잠언성 경구의 울림이 크게 다가온다. 이젠 N세대들도 촛불과 SNS에만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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