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을 제 고향으로 만드는 중이죠”


자주 만나 깊이 이해하는 과정 필요
내가 사는 곳에서 행복할 수 있어야

 

 

 

 

감리교회 목사, 지역 활동가, 평택서부재가노인복지센터장, 평택협동사회네트워크 이사장, 재사용 나눔 가게인 안중 ‘더함장터’ 매니저 등 이 많은 수식어들을 모두 가진 사람이 있다. 바로 공도에서 ‘하늘씨앗교회’에서 목회를 하며 안중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정인 목사다.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일꾼
“안중 사과나무치과 지하에 있던 아름다운가게가 1층으로 이전하면서 지하공간이 비워지게 됐어요. 그곳에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논의를 거쳐 재사용 나눔을 할 수 있는 더함장터를 마련했고 제가 매니저로 일하게 됐죠”
박정인(48) 목사는 안중에서 지역활동가로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다. 더함장터가 방정환재단 산하로 편입되면서부터는 방정환재단의 직원이 되었고 더 이전에는 재가노인복지센터장으로도 일했다. 지역 일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협동사회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이사장이라는 직함의 무거운 책임도 맡게 됐다. 
“본격적으로 지역 일을 하겠다고 생각하면서부터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어요. 그때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제게 목표나 계획을 물었고 전 그때마다 우선 모여서 함께 결정하면 그대로 하겠다고 대답하곤 했죠. 그때부터 지금까지 지역의 많은 분들과 모여 함께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박정인 목사는 현재 지역 일을 하는 분들과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모여 독서모임을 갖는다. 목사라는 직업을 가진 만큼 저녁에는 그분들과 함께 예배모임도 한다. 이렇게 자주 만나 생각을 교환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은 지역 일을 하면서 힘든 일이 생길 때 함께 견딜 수 있는 힘을 갖게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신앙으로 살아가는 감리교 목사
“감리교에서는 목사들에게 항상 설교, 이사, 죽음 이 3가지를 준비해야 한다고 요구해요. 안중에는 좋은 분들이 많아서 제가 아니라도 잘 될 거라는 믿음이 있죠. 언제일지 몰라도 만일 내게 힘이 남아있다면 다른 곳에서의 새로운 시작은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박정인 목사는 자신이 스스로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온화하고 푸근한 목사는 아닐 거라며 웃는다. 격동의 80년대를 살아야 했던 대한민국 청년으로 운동권에서도 활동했고, 목회현장에 나와서는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에서 정책기획실장으로 일하기도 했던 그는 자신이 대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한 이후 전도사로 활동할 때까지도 아내는 남편이 목사가 되는 것을 생각지 못했다며 웃는다. 그랬던 그가 목회자로서의 활동을 평생 해야겠다고 결심한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다.
“고등학교 3년을 이유도 없이 시름시름 앓으며 보냈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조금만 움직여도 코피를 흘리곤 했죠. 당시 죽도록 신앙에 매달렸는데 대학생이 되면서부터는 거짓말처럼 병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저는 그걸 신앙의 힘이었다고 믿고 있죠. 저는 부족하지만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소망해요”
박정인 목사는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신학대학원을 다닌 후 충청도 농촌에서 7년간 목회를 했다. 그러나 부목사로 있던 중 다시 뼈에 염증이 생기고 척추협착이 생겨 6개월이 넘게 큰 고통을 겪어야 했고 결국 부목사 자리를 내려놓으면서 안성 공도로 이사해 지금까지 목회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고향으로 삼고 싶은 곳 안중
“서울에서 나고 자랐는데 서울은 늘 변화하는 곳이라 지금도 고향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어요. 안중은 제가 대학 다닐 때 농활을 하던 곳인데 20대 초반에 본 안중은 정말 시골이었죠. 어쩌면 전 이곳에서 고향을 만들려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지금 중·고등학생인 제 아이들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박정인 목사는 주변사람들로부터 안중이 고향도 아닌데 왜 지역 일을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말한다. 그때마다 그가 들려주는 말은 한결 같다. 그것은 바로 내가 여기서 오랫동안 살고 싶고, 내 아이가 여기에 살고 있고, 내가 사는 이곳에서 행복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라는 답변이다.
“지역에서 일하며 느끼는 것은 시민운동을 하거나 지역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거예요. 단시 헌신하게 되면 대를 이어가지 못하게 되고 결국 사회를 온전히 변화시킬 수 없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 지역 활동가가 일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더함장터가 최소한의 그런 역할을 했으면 해요”
평생 가난과 함께 하면서도 항상 곁을 지켜주는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박정인 목사, 자신이 다른 지역 일을 하고 싶다고 해도 가족이 이곳을 원한다면 어쩔 수 없이 가족과 함께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웃는 그는 처음 신학을 한다고 했을 때 아버지의 말씀을 지금도 화두처럼 가슴에 안고 산다. 그것은 바로 잘못된 일로 텔레비전에 나오는 목사는 되지 말라는 아버지의 유언 같은 간곡한 부탁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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