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를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매우 적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지촌 미군 ‘위안부’를
‘자발적’인 선택이었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지난 1월 20일 서울중앙지법 민사22부 전지원 부장판사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판결을 내렸다. 미군 기지촌 클럽에서 미군을 상대로 ‘일’했던 여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 배상 청구 소송에서, ‘낙검 수용소’에 가두고 치료를 한 행위가 위법한 것이므로 국가가 배상책임을 져야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 K-6 캠프험프리스수비대는 일제 말 일본군 비행장이 있던 자리였지만 해방 후 6·25 전쟁을 거치면서 미군이 주둔하게 됐다. 일제 말 건설된 비행장이 활성화 되지 않아 현재와 같은 ‘기지촌’이 형성되지는 않았지만, 미군 ‘기지’가 존재하게 되자 가난한 여성들이 기지 주변으로 몰려와 생계를 위해서 ‘일’을 하게 되었다. 해방 전이나 후나 여성들이 식모나 여공이 되는 것 이외에 생계를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매우 적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지촌 미군 ‘위안부’가 되었다고 이를 ‘자발적’인 선택이었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게다가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가 언급하듯, 이제는 ‘강제성’을 포괄적으로 해석해서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를 당했을 때 이를 자기의지로 탈출할 수 있었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옳다. 만약 자기 의지로 탈출할 수 없었다면 ‘엄청난 강제성’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미군 ‘위안부’들이 미군을 상대하도록 ‘강제’한 것은 1차적으로는 포주들이었지만 그 배후에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있었다. <동맹속의 섹스>를 쓴 캐서린 H.S. 문에 따르면 공무원들은 그들을 ‘민간 외교관’ ‘달러벌이 역군’으로 지칭하며 클럽영업을 독려했다. ‘국화회’ ‘자매회’ 등 자치회를 만들도록 하고 대통령 직속으로 ‘기지촌정화위원회’까지 만들어 그들의 ‘섹스’를 관리했다.
국가와 지역사회도 그들에게 빚지고 있다. 한때 기지촌에서 그들이 벌어들인 달러 수입이 국민 총생산의 25%, 평택지역 경제의 60%를 지탱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로서는 믿겨지지도, 믿고 싶지도 않은 진실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애국자’들은, ‘민간 외교관’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우리 사회는 관심이나 있는 것일까. 평택으로 미군기지 이전이 본격화 되면서 할머니들이 늙고 병든 몸을 누이며 여생을 보내던 쪽방의 방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안정리 일대의 땅값이 급등하면서 전·월세 값도 덩달아 상승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과거에 혜택을 입었으니 이제라도 이들의 여생을 우리가 챙겨야 한다는 말이 공감을 얻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번 소송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문정주 서울대 의과대학 겸임교수는 1990년대 중반 의정부의 한 기지촌 근방 보건소에서 의사로 근무했다. 그녀는 의사로서 그들을 사람으로 대하며 ‘진료’를 하는 대신 그저 성병 유무만을 검사하기 위해 ‘사물(피검체)’로 대했다고 고백했다. 의사가 판사에게 던져준 직업윤리의 무게는 작지 않았을 것이라 믿는다.
재판부는 5년간 권리 행사를 하지 않으면 권리가 소멸되는 소멸시효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군 ‘위안부’에 대해서 폐쇄적이었던 ‘국민정서’ ‘가부장적 사회문화’ 때문에 권리행사가 어려웠다고 본 것이다.
또 하나의 소멸시효가 흐르고 있다. 우리 할머니들은 너무 빨리 늙고 병들고 죽어가고 있다. 우리가 그들을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