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한 결과물들이
‘생활’의 한 부분이 되고
행정이 주가 아닌
사람이 주가 된다는 것,
이런 게 내가 생각했던
사회복지의 모습이다

 

▲ 백정훈 사회복지사
하래장애인주간보호센터

사회복지사로서의 시작은 ‘월급쟁이’였다. ‘행정서류’에 치여 산다는 사회복지사 선배들의 앓는 소리를 듣고 사회복지학부를 졸업한 후 접었던 길을 4년 만에 다시 들어섰다. 그것도 무척 생소했던 장애인복지 분야로. 평택시 포승읍, 서부권역에 있는 하래장애인주간보호센터는 그렇게 내 첫 사회복지현장이 되었다.

처음에는 고단했다. 월급은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의 벌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기에 조금 부족했다. 야근도 많았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하래에 다니는 아이들의 부모님들과 회의가 이어졌다. 어느 시점이 되자 한계에 이르렀다. 힘에 부친다고, 너무 어렵다고,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월급 받고 일하면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선가 그런 고민을 접었다. 평택시 서부권역에서 함께 일구어가는 것들의 결과를 조금씩 보면서부터다. 오랜 회의와 공부를 통해 장애인 자녀의 부모들이 만든 ‘장애인보호자협동조합 오름’. 오름의 부모들은 평택시립 안중도서관 지하에서 매점을 운영하고 있다. 도서관에 들러 책을 보다 매점에 가면 부모님들, 그리고 내가 일하는 하래장애인주간보호센터의 아이들을 볼 수 있다. 지역의 다양한 조직의 사랑방과 모임 장소로도 사용돼 낯익은 분들도 자주 볼 수 있다.

매점을 나와 1~2분을 걸어 도서관 옆에 있는 서평택국민체육센터에 가면 장애인 보호자들이 만든 ‘장애인자립공동체 가온누리협동조합’이 운영하고 있는 ‘꿈 볶는 카페’가 있다. 장애인 바리스타가 만들어주는 맛있는 커피를 조합원이기에 저렴한 가격에 마실 수 있다. 커피를 사서 차를 몰고 5분 정도만 가면 경기물류고등학교 옆에 있는 서부장애인주간보호센터에 도착한다. 지역에서 필요한 다양한 회의와 대화가 이곳에서 이뤄진다. 지역주민들을 위해 말 그대로 ‘열려 있는’ 공간이다.

이렇게 함께 일하는 분들의 노력과 수고는 이미 내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일한 결과물들이 우리 ‘생활’의 한 부분이 된다는 것, 그리고 행정이 주가 아닌 사람이 주가 된다는 것, 이런 것이 바로 내가 생각했던 사회복지의 모습이었다.

행정 ‘일’은 절차와 과정, 결과가 정해져 있다. 무엇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는 관련 절차와 규정, 법과 원칙을 따져보면 몇 시간 만에 답이 나온다. 필요한 것은 규정과 매뉴얼이다. 하지만 사람의 ‘일’은 다르다. 이 분야의 일에서는 단시간에 답이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과 일한다는 것은 협력과 대화, 반영과 조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월급쟁이에서 회심하게 된 나는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니라 ‘내가 살기 좋은 지역’을 만들기 위해 일한다. 일상을 살면서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매점, 카페, 공간들이 이 평택시 서부권역에 만들어져 간다. 일 때문에 만나고 들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활의 한 부분이 되어가는 사람들과 공간들. 나는 이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 한 사람의 주민으로서 일한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