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는 공동육아를
너와 내가 어울려 함께
살아가기라고 정의했다.
내 아이를 맡기거나
남의 아이 보호를 넘어서
우리 아이들을
함께 키우자는 것이다

 

 

▲ 양희경 주무관
평택시 자치교육과

평택시 자치교육과 거버넌스팀에서 이번 달 포럼 주제를 ‘공동육아’로 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이 기고문은 내가 꼭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 하나도 제대로 키우기 힘들다는 요즘 세상에 난 용감하게도 아이 셋을 둔 워킹맘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고향에 내려와 친정 식구들의 도움을 받으며 육아와 일을 병행하고 있지만, 3년 전만 해도 나의 목표는 아이들이 아프지 않게, 내가 회사에 휴가를 낼 일이 없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이었다. 하루를 버티고, 일주일을 버티고, 주말이 되면 별 탈 없이 일주일을 버텼음을 감사해 하며 소소하게 서로를 위로했다.

이런 나에게 TV에서 본 ‘공동육아’는 그야말로 꿈과 같은 이야기였다. 엄마가 어린이집의 운영 주체가 되어 아이들과 함께 놀이하고 체험하며 아이의 성장과정을 함께 한다는 것이 워킹맘인 나에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아이를 기르는 환경은 너무 고립되어 있다. 모든 것이 부모의 몫이자 책임이다. 엄마·아빠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 육아의 어려움을 하소연하고 함께 해결 방안을 찾을 누군가가 필요하다.

주말이 되면 집에서는 차마 아들 셋의 넘치는 활력을 감당할 수 없어 동네 놀이터나 키즈 카페에 자주 간다. 그곳에는 늘 아이들로 넘쳐난다.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한 아이들은 그곳에서도 함께 어울려 노는 방법을 몰라 혼자 놀거나 혹은 부모가 함께 놀아주는 모습을 자주 본다. 아이들은 함께 있어도 함께 노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지금의 아이들 옆에는 부모나 친구 대신 텔레비전, 핸드폰, 컴퓨터가 함께 한다.

1980년대에 삼남매를 키우시고 지금은 나와 함께 자의반 타의반으로 공동육아를 하고 계시는 친정엄마께서 말씀하셨다. “천기저귀를 일일이 손빨래하고 아이를 업고 일을 다녔던 우리 세대에 비하면 지금 세대 엄마들은 참 편한 세상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 같은데 왜 지금 엄마들이 애 키우는 게 더 힘들어 보일까? 하긴 우리 때엔 이웃들이 너도 나도 모두 내 아이처럼 봐줬어”라고 말이다. 결국 핵심은 ‘사람’인 것이다.

이경란 강사는 공동육아를 ‘너와 내가 어울려 함께 세상을 살아가기’라고 정의했다. 내 아이를 맡기거나, 남의 아이를 보호해 주는 것을 넘어서 ‘우리 아이들을 함께 키우자’는 것이다. 영·유아 시절에는 품앗이 돌봄공동체, 협동조합·국공립 어린이집으로, 초등시절에는 초등 방과후교실이나 지역아동센터로, 더 나아가서 평생에 걸쳐 마을학교와 인생학교 등의 다양한 형태로 우리 인생 전반에 걸쳐 사회 구성원이 함께 하는 것이다.

이미 서울시 등에서는 부모와 교사가 직접 운영하는 사회적 협동조합 어린이집, 품앗이 공동체육아 등 공동육아가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 시에는 공동육아라는 것은 생소한 개념이다.

아이가 없는 도시는 미래가 없다. 평택시가 ‘살고 싶은 도시, 매력 있는 도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부모와 아이 모두 행복한 도시가 되어야 한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 평택시가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이 끊이질 않는 도시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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