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에 대한 올바른 역사의식
문화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주민들에 대한 지역사교육
언론사의 노력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도
지금보다 더해져야 한다

 

 

▲ 김해규 소장
평택지역문화연구소

군복무시절 중대 군종을 했다. 군종은 일반 사병과 같아서 일요일에 교회나 법당에 가도록 안내하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어느 해부터 신임사병의 상담까지 맡으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상담했던 사병들 가운데 ‘김맹구’라는 친구가 있었다. 깡마르고 신경질적인 경상도 사나이였다. 당시 텔레비전 코미디프로에서는 코미디언 이창훈 씨의 ‘맹구’ 연기가 선풍적 인기였다. 헌데 하필이면 이 친구의 이름이 ‘맹구’였다. 가까스로 웃음을 참으며 누가 이름을 지었냐고 물었더니 마뜩찮은 표정을 지으며 ‘우리 아버지가 술 처 묵고 지었다 아닙니꺼’라고 대답했다. 아직도 ‘이름’하면 그 친구의 억센 경상도 사투리와 신경질적인 표정이 떠오른다.

사람에게나 특정 지역에 ‘이름’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이름을 통해 공동체에 대한 연대의식과 삶의 자긍심을 갖는다. 조선후기에는 유교적 정통성이 강조되면서 ‘항렬’이 중시되었다. 항렬은 친족집단 내에서 계보상의 종적인 세대관계를 나타내는 수단이다. 선조들은 항렬을 통해 종적(縱的) 연대의식과 서열의식을 강화하고 가문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했다.

지역 명(名)은 그 지역의 역사적 경험이나 지리적 특징을 담고 있다. ‘현촌’ ‘서촌’ ‘소골(우곡)’ ‘박골’ 같은 지명은 마을을 개척한 대표 성씨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객사리’ ‘만호리’ ‘읍내리’ ‘추팔리’ ‘군문동’은 과거 행정구역이나 관아의 명칭 또는 역사적 경험이 지명으로 정착된 경우다. 지형적 특징이나 생산 활동에 따라 명명된 ‘배미’ ‘조개터(합정)’ ‘잔다리(세교)’ ‘율포(밤개울)’ 같은 지명도 있다. 필자가 구구절절 지명(地名)들을 나열하는 이유는 지명이 갖고 있는 전통과 문화, 그리고 역사적 가치를 말하고 싶어서다.

두어 주 전 경기도평택교육지원청에서 신설학교 교명(校名)을 심의했다. 이날 회의에는 청북신도시를 비롯한 평택지역 내 신설학교 교명이 심의되었다. 안건 가운데 가장 논쟁이 되었던 것은 ‘옥길초등학교 교명 개정’ 건이었다. 진즉 결정되었지만 확정 고시되지 않았던 옥길초등학교라는 교명이 촌스럽고 학교 구성원들에게 자긍심을 갖지 않게 한다는 이유로 바꿔달라는 요구였다. 학교명 개정 요구의 중심에는 청북신도시의 주민들로 구성된 학부모들이 있었다. 필자와 몇몇 위원들은 ‘옥길이라는 지명이 촌스럽다’라는 대목에 발끈했다. 오랜 격론과 2차 투표까지 가는 열띤 과정 끝에 학부모들의 요구에 따라 개명되었지만 뒷맛은 씁쓸했다.

성남시 ‘분당(盆唐)’은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만들어진 지명이다. 본래 동이를 굽던 수공업자 마을이 있어 ‘동이점’ 또는 ‘분점리’라고 부르던 것에 당우리를 통합하면서 ‘분당(盆唐)’이 되었다. 1990대 초에 개발된 분당에는 포화상태였던 서울지역 인구가 대거 유입되었다.

또 수도권전철이 연결되고 서울대학교 부속병원과 우수한 교육시설이 확충되면서 일산과 함께 중산층들이 거주하는 서울외곽의 대표적 위성도시로 성장했다. 분당이 수도권의 대표적 위성도시로 성장했지만 필자는 아직까지 ‘분당(盆唐)’이 촌스럽다며 바꾸자는 주장을 들은 적이 없다.

지역사와 문화에 대한 인식차로 인한 갈등은 향후 평택시가 발전하면서 지속될 전망이다. 이주민들은 평택시민이라는 정체성보다는 중심도시 서울에서 ‘시골’로 밀려 내려왔다는 상실감과 박탈감을 영혼 없는 세련된 문화로 위로받으려 할지 모른다.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하려면 우선 평택시와 교육지원청이 철학을 가져야 하고 지역사에 대한 올바른 역사의식, 문화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주민들에 대한 지역사교육, 정체성교육도 절실하다. 언론사의 노력,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도 지금보다 더해져야 한다. 우리의 노력으로 화성시민이기보다 ‘동탄시민’이기를 고집한다는 통탄지역 사례를 답습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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