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흔히 쓰는 말 중 ‘떡’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의미가 천차만별로 해석된다. 떡이란 원래 곡식가루를 찌거나 빚어 만든 동양권의 고유 음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칠 머리를 못 감았더니 떡이 됐네”라고 말할 때의 떡은 머리가 뒤엉켜져 잘 빗어지지 않는 머리카락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 “떡 주무르듯이 하는구나” 하면 자기 마음대로 횡포를 부린다는 의미를 뜻하는 것이다. 특히 “떡을 친다”는 넘칠 정도로 양이 충분하다는 뜻도 있지만 남녀의 교합을 속되게 표현할 때도 쓰이는 말이며 “떡이 되도록 술을 퍼마셨다”고 하면 인사불성의 만취상태를 말한다.
이처럼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다양한 만큼 예부터 떡에 얽힌 속담이 많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밥 먹는 배 따로 있고 떡 먹는 배 따로 있다”는 속담도 있다. 이밖에도 “떡 주고 뺨 맞는다”느니 “떡 달라는데 돌을 준다”는 등 세상인심의 야박함을 빗댄 속담도 있다. 또 “떡이나 해 먹을 세상”이라니 “떡 해먹을 집안”이라는 욕설도 있다. 이 말 뜻은 궂은 일만 계속 일어나는 세상이나 일이 안 되는 집안을 지칭할 때는 자조적인 말이 되기도 한다. 떡을 해 놓고 고사라도 지내야 할 정도로 상황이 나쁘고 풀리는 게 없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뜻이다. 예로부터 떡이란 절기에 맞춰 해 먹는 절식이자 별식이다. 특히 동양권인 우리나라의 경우 설날은 가래떡, 대보름은 약식, 칠석은 백설기, 추석은 송편, 상달은 시루떡 등 우리 조상들은 명절과 절기에 맞춰 갖가지 떡을 만들어 먹었다. 뿐만 아니라 인심도 좋아 생일이거나 고사를 지내거나 이사를 했을 때도 떡을 만들어 이웃들과 나눠 먹으며 미덕을 보이는 민족이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설이나 추석, 연말이 되면 직장에서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줄 때 ‘떡값’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또 이의를 다는 사람도 없이 떡값이라는 의미로 가볍게 받아들인다. 즉 잠재적인 습관 속에서 무슨 때가되면 아무리 형편이 어렵더라도 당연히 떡은 해 먹어야 한다는 인식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의미의 떡값이 세태를 반영한 탓인지 명절이 와도 각종 이권이나 입찰 등 필요에 따라 사례비 명목으로 전해지고 있다. 얼마 전 종영한 정치야심을 드러내는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느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 똑같은 것은 역시 과욕이구나 하는 것이다. 여하튼 떡값의 의미가 요즘 들어 타락되고 왜곡되기는 했지만 떡값의 의미는 나눔의 미덕을 상징하는 말이다. 해마다 맞이하는 추석이지만 이맘때만 되면 늘 허전한 가을을 경건함으로 채워주는 가을의 기도가 떠오르곤 한다.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다. 낙엽이 지는 때가 되면 누구나 마음 속 깊이 묻힌 추억을 끄집어내기 마련이다. 오래도록 잊었던 태(胎)의 소리. 거짓이 끼어들 틈이 없는 절절한 고백을 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만인을 사랑한 예수는 “지극히 작은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요, 지극히 작은 살마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가을은 누가 뭐라 해도 추석의 계절이다. 추석은 우리에게 고향이자 조상이며 역사이고 자연이다. 해마다 추억이 우리에게 소중한 이유는 메마른 일상을 잠시 멈추고 조상의 흰 뼈가 시퍼런 역사로 누워있는 자연으로 돌아가 잃어버렸던 삶을 정갈하게 씻어내는 동심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에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그리운 고향을 찾아 길을 떠난다. 올 추석엔 대통령선거를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하겠지만 추석날 조상의 무덤 앞에 엎드리면 누구나 경건한 고독에 잠길 것이다. 마른 잎이 떨어지는 앙상한 나뭇가지 위로 날아다니는 새들, 치열한 고독의 무덤 앞에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성찰할 것이다. 격랑처럼 굽이치던 고뇌의 세월, 순수했던 명상의 언저리를 서성이며 아직도 세속의 탐욕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 마음 아파할지도 모른다.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비옥한 시간을 바쳐 경작하는 가장 아름다운 열매, 그것은 아마도 사랑의 품성이 아닐까.
“나는 온 대중을 구원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나는 한 번에 오직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을 뿐이다”
뭇 사람을 위해 헌신한 테레사 수녀의 말이다. 이제 머지않아 추위와 함께 헐벗고 굶주린 채 힘든 삶을 살고 있는 내 이웃에게 나눔의 미덕을 상징하는 떡이 전달되며 더도 덜도 말고 팔월 한가위만 같아라 하는 말처럼 풍요로운 추석이 되었으면 한다. 오직 한 사람을 생각하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누며 베푸는 삶을 사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호올로 있는 가을, 온갖 은원(恩怨)을 품어 안은 조상의 무덤가에 이르러 철새만도 못한 내 미숙한 넋일망정 감히 하늘을 우러르며 풍요한 추석의 기원을 읊조려야 할 것 같다.
“기도하게 하소서. 이웃을 사랑하게 하소서. 홀로 있게 하소서”

 

 

 

 

深頌 안 호 원
한국심성교육개발원장
심리상담사, 시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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