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3월 6일

30대 과부, 20대 청년 불륜 아기
연못에 버려, 지나던 사람이 발견

 

 


 

“지나간 륙일에 진위군 오성면 양교리(振威郡 梧城面 梁橋里)의 조그마한 연못 속에 간난아해의 사체가 있는 것을 어떤 사람이 발견하고 보고하였으므로, 소할 평택경찰서에서는 즉시 사범주임 현장을 급행하여 안중리(安仲里) 주재소원들과 협력하여 범인을 수색한 결과 (중략) 간부 정룡화와 협력하여 순산한 아해를 즉시 이불을 덮어놓고 힘껏 눌러서 죽인 후 사체는 간부를 시키여서 누더기에 싸서 산속 삼상현(三相峴) 소재 전기 연못 속에다 버리게 하였다고 일일이 자백함으로 동 경찰서에서는 이상복과 간부와 의사 세 사람을 한꺼번에 인치하고 목하 엄중히 취조 중이라더라.”(『매일신보』 1922년 3월 15일)

2006년 7월 23일 서초 서래마을에서 영아살해사건이 발생하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적이 있었다. 이 사건은 프랑스 여인이 영아 시체 2구를 자신의 집 냉장고에 넣어 둔 사건이다. 범인은 프랑스에서 재판을 받고 징역 8년을 언도받았다. 요즘도 종종 영아를 살해하고 유기하는 사건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영아가 유기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는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생활고이고, 다른 하나는 비도덕적 관계로 태어난 유아이기 때문이다. 성(性)이 자유로워진 오늘날에는 후자가 더 많은 편이 아닌가 한다.

평택에서도 영아를 살해한 후 유기한 사건이 1922년 3월에 발행하였는데, 사건인즉 다음과 같다. 양교리에 이상복이라는 과부가 있었다. 슬하에는 13세 되는 자식이 있었다. 늘 혼자서 지내던 과부는 한참 동생뻘 되는 양교리 구장 아들 정룡화와 우연히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고, 임신을 하였다. 남의 이목을 부끄럽게 여긴 과부는 임신한 아이를 없애기 위해 안중에 사는 의사 서상록에게 부탁을 하였다. 서상록은 처음에는 거절하였으나 여러 번 부탁을 하자, 아이를 없애는 약을 지어주었다. 그러나 만삭에 이른 상태가 약효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아이를 순산한 과부는 정부를 불러 상의한 후 아이를 죽여 버리기로 하였다. 이들은 태어난 아이를 이불로 눌러 죽인 후 누더기에 싸서 마을 뒷산 삼상현의 한 작은 연못에다 2월 30일 한 밤중에 버렸다.

영원히 밝혀지지 않았을 영아살해유기사건은 이곳을 지나가던 한 사람에 의해 밝혀졌고, <매일신보>에서는 크게 기사로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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