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수준에
그런 시설이 필요하냐?’는
여론의 반발에 부딪히는 모순을
해결하려면 당장 내 주변에 있는
기존의 시설에 나부터
한 발 내디뎌야 한다

 

 
▲ 이수연 전 부이사장
한국사진작가협회

인프라라는 용어가 낯설지 않다. 본딧말은 하부구조나 하부조직을 뜻하는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지만 오늘날에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사용하는 ‘문화’처럼 경제활동의 기반을 형성하는 시설·제도 등의 의미를 넘어 모든 영역에서 접미사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평택시민 200인이 모여 진행한 원탁토론에서도 평택의 가장 큰 문제로 ‘부족한 문화예술 인프라’를 꼽았다. 시민의 의식이 이 정도로 성숙했다. 하지만 ‘인프라’처럼 애매모호한 것도 없을 듯해서 현장의 생각을 밝혀본다.

우선 ‘문화’와 ‘예술’의 모호한 쓰임새를 보자. 좁은 의미의 문화에는 예술이라는 단어를 안 붙인다. 그런데 ‘문화’보다 더 세분화하는 ‘예술’에는 오히려 문화라는 단어를 덧붙여 쓴다. 우리가 프랑스 파리를 예술의 도시라고 부르지 문화예술의 도시라고 부르지 않으면서도 분명하게 예술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장르를 말할 때마저 굳이 ‘문화예술’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이번 ‘인프라’도 마찬가지다.

200인의 시민 원탁 토론은 촉진자 또는 ‘회의 도우미’ 개념의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 기법을 썼다. 경험상 이 방법에는 단점이 있다. 난상 토론을 거쳐서 도출해 낸 몇 가지 안을 놓고 참가자가 복수의 표를 던져서 가장 많이 득점을 한 표제어를 선택하기 때문에 전문성보다 감수성에 가까운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예술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결론에 대해서도 정작 현장 종사자가 느끼는 현실과 그 갭이 클 수 있다.

인프라라는 말 대신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초시설’이라고 바꾸면 그 의미가 좀 더 명확해지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부족하다는 것인지 모호하다. 어떤 이는 백화점까지 문화시설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전통시장과 극장도 거기에 포함시킨다. 요즘에는 주민자치센터도 ‘인프라’다. 당연히 도서관, 여성회관, 각종 복지관, 박물관 등등도 ‘문화’에 포함될 것이다. 나아가 우리에게는 청소년수련원, 체육센터, 두 곳의 국제교류센터도 있고 평택호처럼 훌륭한 자연 인프라도 있다. 찾아보면 아주 많다.

예술 인프라도 그렇다. 가장 기본시설인 공연장과 전시장을 갖춘 문예회관이 세 곳이나 되고 평택호예술관과 한국소리터 같은 전용공간도 있다. 실정이 이런데 문화 활동과 예술 활동을 굳이 구분해서 살펴본다고 해도 구체적으로 어떤 시설이 부족하다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 보면 평택에 없는 ‘인프라’는 박물관쯤이 될 것 같은데 문제는 ‘다른 도시보다’라고 붙인 단서다. 대도시와 비교해서 대형 공연장이나 전시장이 없다면 맞는 말이다. 일류기업이 투자한 최신 예술시설이 없다고 해도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비슷한 규모의 어떤 도시와 비교해서 무엇이 부족하다는 말일까.

시민들의 결론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평택의 문화예술 인프라들은 대충보기에도 시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턱없을 정도로 낡은 것들이거나 ‘선 시공 후 용도’로 지은 것들이 많아 제대로 쓸 수 있는 것들이 없고 그런 인식이 시설부족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시점에서는 일 년 내내 텅텅 비는 시설에 사람들이 북적이도록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인프라 투자는 수요공급이 교차하는 곡선 상에서 만나기 때문이다. 물론 공공재로서의 시설투자를 수요 공급으로만 따져서는 안 되는 것이 문화예술이다. 수요에 맞추면 시민 욕구의 병목현상이 빚어지기 때문에 선순환 구조로 투자하는 게 맞다. 하지만 ‘졸라야 만들어주는 행정의 특성’과 ‘지금 우리 수준에 그런 시설이 필요하냐?’는 여론의 반발에 부딪히는 모순을 해결하려면 당장 내 주변에 있는 기존의 시설에 나부터 한 발 내디뎌야 한다. 그래야 부족한 가운데서도 신명나게 한판 놀아 줄 문화·예술가가 존재할 수 있고 ‘인프라’도 비로소 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것이 ‘평화예술의 전당보다 문예회관을 충분히 활용해 달라’는 것에 대한 대답도 될 것이다.견해를 덧붙인다. 우선 30년 가까이 묵은 명칭을 새롭게 바꿔보자. 동사무소를 주민자치센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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