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9월 27일

산업·지역발전을 위해 유지들 주도
9월 10일 조직, 9월 27일 발회식


 

 


 

“振威郡에서는 管內 道路가 不完全하여 産業開發 地方發展上 莫大한 影響이 있음을 痛嘆하고 郡內 官民有志와 具體的 協議한 後 道路期成會를 組織하였는데, 지난 二十七日 當地 公會堂에서 管內有志 及 團體代表 等이 會合하여 京畿道 小西 主事 及 島田 技師 並 倉富 管區主任 臨席裡에 發會式을 盛大히 擧行한 後 卽時 一同이 各 主要 道路를 終日 視察하고 午後 八時 閉會하였다 한다.”(『매일신보』 1938년 9월 30일)

도로와 철도는 교통수단이기도 하지만 도시발전의 가장 중요한 도구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에서는 도로와 철도를 유치하기 위해 사활을 걸기도 한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최근 평택은 철도 경부선 외에 수서~지제간 SRT가 개통됨으로써 새로운 철도시대를 열었고, 경부고속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 외에도 평택~제천고속도로 등 신설 고속도로가 속속 개통됨에 따라 ‘사통팔달’을 실감하고 있다.

도로와 철도는 오늘날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에도 치열하게 유치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지역 유지들이 도로기성회를 조직하고, 행정 관서를 찾아다니며 압력을 넣기도 하고, 시위를 하기도 하였다. 평택도 1938년 도로기성회를 조직하고 도로 개수와 유치를 위해 맹렬하게 투쟁(?)을 하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도 평택은 ‘곡창穀倉’으로 유명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유통망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도로가 필요하였다. <매일신보>에 의하면 “전체적으로 평야이요 산림이 없는 반면 지형이 저하하여 돌이 없어 군내 도로가 길인지 논인지 모르게 되어”라고 하였듯이, 도로가 논인지 길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일본인 모리야마(森山) 군수가 부임하자 평택군 관내 도로 전부를 개수하는 3개년 계획을 마련하였다. 더욱이 ‘산업발전과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도로를 확보하는 것이 절실하였다.

이에 따라 지역 유지들은 1938년 9월 10일 평택면사무소에 모여 도로기성회를 조직하였다. 회장에는 일본인 니시무라(西村折太郞), 부회장에는 윤응구·신순호·정용운·이병주 외에 일본인 4명이 포함되었다. 이외에 황경수와 임홍재가 감사로 참여하였다. 평의원은 35명, 고문은 9명으로 도로기성회를 구성하였다. 도로기성회는 9월 27일 공회당에서 발회식을 갖고, 오후 8시까지 하루 종일 평택 관내 도로를 시찰하였다. 새로운 평택을 꿈꾸며…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