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당사자이거나
그 가족이었다고 생각하자
한 해 농사 혹은
전 재산을 잃었을 심경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었다

 

▲ 이은지 봉사원
대한적십자사 평택굿모닝봉사회

지난 7월 16일 약 290mm의 기록적인 폭우로 큰 인명과 재난피해를 입어 현재까지도 복구 작업이 한창 이뤄지고 있는 충청북도 청주에 7월 21일 자원봉사를 다녀왔다. 이른 아침에도 불구하고 대한적십자사 평택지구협의회 봉사원들과 평택 굿모닝병원 임직원 약 60여명이 평택문예회관에서 모여 출발했다. 처음 참여하는 재난지역 봉사에 걱정 반, 두려움 반으로 나서 한 시간 가량 걸려 도착한 수해현장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봉사단들이 각각의 구역으로 배치를 받는 것 같았고 우리도 장갑과 장화, 모자로 나름대로의 무장을 하고 어느 한 농가의 비닐하우스 4동을 지정 받아 철거작업을 돕게 됐다.

아침 9시경부터 시작된 작업은 막연히 TV에서만 보던 가구가 물에 잠기고 침수되는 것 이상의 참담한 현실이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기르던 농작물의 형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홍수에 다 쓸려내려 간 듯 했으며 바닥에는 토마토 몇 개와 깨진 수박, 부러진 옥수수대와 처참할 정도로 부패가 진행된 흑염소만이 남아있었다. 우리는 1차로 하우스 비닐을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일일이 뜯어내고 나중에는 낫과 칼을 이용해 걷어냈다. 비닐이 쇠파이프에 묶여 단단히 고정돼 있었고 높은 천장까지 묶인 비닐을 제거하기란 생각보다 힘들었다.

비닐을 거의 다 제거하고는 2차로 바닥에 널브러진 농작물들을 줍고, 모퉁이에 설치된 검은 장판처럼 보이는 것을 제거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두꺼운 고무재질이라 커터 칼은 힘없이 부러져 남녀 할 것 없이 낫을 들고 잘라내기 시작했다. 아직도 비가 안 말라 흙과 비가 뒤섞여 잘라내기도 쉽지 않고 무게도 만만치 않았다.

잠시 지난 7월 16일, 사과농사를 짓는 부모님께 안부 인사를 했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 그저 ‘우리 집은 아니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직접 겪은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직접 현장에 와보니 수해민들이 얼마나 참담한 마음인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농가 주인은 복구가 된 뒤에도 농사를 처음부터 다시 지어야 하고 피해재산을 지원받는 절차도 까다로워 얼마나 지원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당사자이거나 그 가족이었다면 하고 생각하자 한 해 농사 혹은 전 재산을 잃었을 심경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었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임한 결과 점심을 먹고 오후 2시경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고강도의 작업에도 모두 웃음을 잃지 않고 마치 내 가족 일인 양 도왔다. 다들 온 몸이 흙투성이가 되고 땀에 젖었지만 서로를 격려했고 더운 날 혹여나 쓰러지지는 않을까 수시로 마실 것과 먹을거리 들을 챙겨주면서 염려하는 모습에 감동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누구 하나 불평 없이 밝은 모습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대부분 40~60대로 이루어진 봉사원 분들이 손 발 벗고 나서는 모습이 존경스러웠고 내가 더욱 열심히 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 했기에 뜻 깊은 하루를 보람차게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생애 처음 해본 수해재난지역봉사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또 발생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집에 돌아와서도 얼굴이 벌겋게 익고 온 몸에 땀띠가 올라와 힘들었지만 이에 무색하게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던 값진 경험이었다.

이번 폭우로 피해를 입은 많은 수해민들에게 힘내시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평택지구협의회 봉사원들과 간호사를 포함한 굿모닝병원 임직원들 모두 35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에 한 명의 부상자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모두 함께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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