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주 작가가 쓴 <순교자>라는 장편소설을 보면 한국전쟁 때 공산당에 의해 북으로 납치된 열네 명의 목사 이야기가 나온다. 공산당은 열네 명의 목사들을 산으로 끌고 가 살해했는데 그중 열두 명의 목사는 목숨을 잃고 두 사람은 살아서 마을로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열두 명의 목사는 순교를 한 것이고 살아 돌아온 두 사람은 신앙을 부인해서 목숨을 건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두 목사를 매우 안 좋게 보았고 심지어는 아주 심한 말로 그들을 괴롭히고 힘들게 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고 묵묵히 견디어냈다. 세월이 흐른 후 목사들을 살해한 공산당 간부가 붙잡혀 사실이 밝혀졌다.
“열두 명의 목사들이 살해된 이유는 그들에게 확실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고 살아남은 목사 두 명 중 한 명은 갖은 고문에 정신이 희박해져 죽일 필요가 없었으며 다른 또 한명의 목사는 굳건하게 믿음을 지키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우리가 오히려 감명을 받아서 살려주게 된 것이오”
살아남은 목사가 마을 사람들에게 사실 그대로의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시켰다면 이미 목숨을 잃은 열두 명의 목사들은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 목사는 온갖 조롱과 수모를 당하며 괴롭고 힘들어도 먼저 간 그 목사들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견디는 편을 택한 것이다.
진정한 순교자는 어쩌면 바로 살아 돌아와 침묵으로 일관한 그 목사일 수도 있다. 꼭 말을 해야 말이 아니다. 때로는 침묵이 더 큰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우리에게 그와 같은 배려의 마음이 남아있을까?
흔히 배려는 ‘나를 넘어서는 도약대이며 그래서 세상과 조화를 이루는 연결고리’ 또는 ‘사람간의 관계를 이어주는 고리’라고도 한다. 사례비도 받지 않고 10여년 넘게 협동목사로 지내온 분이 있었다. 그 목사님이 지난 4월말 시무하던 그 교회를 나와 가정예배로 개척을 했다. 그런데 떠나온 교회에서 그 목사님이 왜 그렇게 했어야 하는지는 알지도 못하면서 그 목사님을 나쁜 목사로 내몰아버렸다. 자신들과 미리 상의조차 없었다는데 대해 불쾌해 하는 것 같았다. 그 목사님은 그런 교회의 흐름을 알면서도 굳이 변명을 하지 않았다. 마음에 있는 이유를 사실대로 말하면 담임목사가 성도들에게 나쁘게 비춰질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또 목사들만의 문제를 성도들에게까지 알려 신앙심을 흔들어놓을 수는 없기에 조용히 떠났을 뿐이라고 했다.
10여년 넘게 주일마다 무려 여덟 살이나 아래인 담임 목사를 보고 먼저 인사를 했지만 단 한 번도 인사를 제대로 받아준 적이 없고 시선도 마주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대화도 별로 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교단 행사도 알려주지 않았고 예배 순서에 대한 협조도 없었다. 한 마디로 담임 목사는 그 나이 많은 협동목사가 교회에 있는 것이 불편했던 것이다.
더 괴로운 것은 담임목사 사모다. 말을 함부로 하거나 지나친 관심으로 협동목사 부부가 다투는 일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협동목사가 떠난 이후 한 통의 전화도 없는 담임목사. 그 목사님은 “성도들이 언젠가는 자신의 행동을 이해해줄 날이 있을 것”이라며 모든 것을 자신의 부덕함으로 돌리고 씁쓸하게 웃는다.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정작 관심을 가져야 할 때는 외면하면서도 관심을 갖지 않아도 좋을 때는 지나친 관심으로 상대를 피곤하고 힘들게 한다. 이처럼 남에게 지나친 관심을 가지면서 함부로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가. 맹자는 이에 대해 “이기언야 무책이의(易其言也 無責耳矣)” 라고 했다. 즉 사람들이 함부로 말하는 것은 말에 대한 책임추궁을 받지 않고 일일이 책임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목사님은 자신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노동을 해서 번 돈으로 몇 해 전부터 10여개 개척교회에 분기별로 베풂의 삶을 살고 있다.
개척교회 목사 한 분에게 여름 양복도 해주고 안경도 새로 맞춰주고 때때로 쌀과 생필품도 전달하며 형제처럼 지냈는데 그 개척교회 목사가 자꾸 다른 목사들에게 이간질을 하면서 자신을 불편하게 했다고 한다. 이때도 목사님은 화가 났지만 사실을 밝히려고 하지 않았고 다만 그 개척교회 목사가 좋은 사람은 아니구나 하는 마음에서 올 추석 사랑의 나눔에서 지만 오히려 마음이 무척 불편하고 아팠다고 한다.
결국 그 개척교회 목사에게 뒤늦게 쌀과 송편과 생필품을 전해주었더니 “형님이 바로 예수님 닮은 분이십니다. 없는 말을 하고 돌아다닌 놈 용서하세요. 형님이 너무 훌륭하다보니 내 눈이 뒤집혔나 봅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눈물을 글썽이는 그 개척교회 목사 등을 두드리며 “모든 것을 다 이루게 해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며 기다리자”는 말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의 잘못을 지적하지도 않고 오직 침묵과 나눔으로 그를 용서한 것이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성경에 나오는 말씀이다.

 

 

 

 

深頌 안 호 원
한국심성교육개발원장
심리상담사, 시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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