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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사 人 - 평택해양경찰서 제2대 김영모 서장“열정만 있다면 뭐든 해낼 수 있습니다”
임 봄 기자  |  foxan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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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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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단 순경으로 시작해 총경에 오른 노력파
아내와 아들이 평택의 너른 들판을 좋아해

   
 
지휘자의 위치에 오른다는 건 그만큼 많은 책임과 솔선수범을 전제로 한다. 아랫사람이 잘못한 일이 있을 때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이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일을 헤쳐 나가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누구든 각기 다른 방법으로 리더의 자리를 지켜나가겠지만 특히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의 특성상 해양경찰을 이끄는 수장의 자리는 어떤 자리보다도 더 많은 책임과 솔선수범을 요구한다.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했던 공부
“아버지는 6·25 상이군인이었습니다. 전쟁 트라우마로 인해 평생을 술로 보내셨고 60대 초반의 나이에 간에 이상이 생겨 일찍 돌아가셨지요. 저는 6남매 중 둘째인데 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늘 내가 동생들을 책임지고 집안도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서인지 방학 때가 되어도 놀아본 기억이 없어요. 거제도가 고향이라 방학이면 굴 양식장에도 나가 일하고 거름지게도 지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서 돈을 벌었지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대학 진학은 꿈도 못 꿨어요”
올 7월, 평택해양경찰서 2대 서장으로 부임한 김영모(51) 서장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스스로 가장노릇을 자처하며 동생들 뒷바라지를 하고 가정을 꾸려나갔다고 회상한다. 바닷가에서 태어나 바다를 보며 자란 그가 가장 손쉽게 할 수 있었던 건 배를 타는 일이었기 때문에 졸업한 후 3년 정도는 배를 타기도 했다. 가정형편으로 인해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그에게 공부는 늘 먼 곳에 있는 꿈이었지만 그는 결코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틈만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썼습니다. 진급시험은 2년마다 한번 씩 보는데 한번 떨어지고 나면 2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정말 죽기 살기로 공부했지요. 저는 반드시 진급을 해야만 했거든요. 그래야 월급이 올라가고 가족들도 부양에 동생들 공부도 시킬 수 있었으니까요”
군대를 제대한 후 24살이 되던 1985년에 말단 순경이 된 김영모 서장은 흔들리는 배에서도 어디서든 앉을 곳만 있다면 책을 놓지 않았다. 일을 모두 끝내고 다른 사람들이 잠자리에 들 때가 되면 책을 들고 공부할 곳을 찾기 시작해 때론 쌀 창고에서, 심지어는 시끄러운 기관실에서도 남들이 피우다 버린 담배필터를 귀에 꽂고 앉아 늦게 까지 공부를 이어가 현재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장애아들 위해 공부한 사회복지사
“아이가 셋인데 그중 셋째 아들에게 장애가 있습니다. 그 녀석을 낳을 당시 저는 멀리 떨어져 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산기가 오자 아내 혼자 아이를 낳으러 갔지요.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이가 나오질 않는 거예요. 의사는 자연분만을 유도하다 산모와 아이 둘 다 목숨을 잃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산모라도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수술을 했는데 결국 아내는 살고 아이는 식물인간이 될 거라는 판정을 받았어요. 그런데 아이 엄마가 집에 돌아와 죽어가는 아이를 매일 보듬어 주는 과정에서 기적처럼 5일 만에 아이가 깨어났어요. 정말 기적이었죠. 산소부족으로 인해 뇌 손상을 입어 언어기능은 상실했지만 그래도 아이가 건강하게 우리 곁에 머물 수 있으니 아내와 저는 그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합니다”
행정학을 공부하면서 복지에 관한 내용을 터득했던 그는 자연스럽게 사회복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고 이후 속초전문대학을 다니며 사회복지사를 공부했다. 그리고 자신이 늘 몸으로 부딪히며 삶을 이어왔던 것처럼 지금은 대학생이 된 첫째는 물론이고 둘째에게도 가장 어렵고 남들이 기피하는 봉사시설을 찾아가 직접 몸으로 체험하며 실질적인 봉사를 하도록 가르친다.
“아이는 지금 고등학교 1학년인데 매주 금요일마다 아내와 함께 평택에 내려오곤 하지요. 오면 항상 저와 함께 자전거도 타고 운동도 하는데 너른 들판을 보면서 어찌나 좋아하는지. 저는 아이에게 늘 들려줍니다. 세상에는 신체적인 부족함을 열정으로 이겨낸 사람들도 많고 열정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말예요. 요즘은 여건만 허락된다면 아들이 좋아하는 평택에서 노후를 보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김영모 서장은 무엇이든 열정만 있으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걸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 말하고 있다. 그가 말단 순경에서부터 시작에 끊임없는 열정으로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듯이 세상은 열정을 가진 자에게는 항상 열려있으리라는 사실을 믿기 때문이다.

열정으로 노력하는 소통의 리더십
“3개월 정도 이곳에서 지내본 느낌은 해양경찰서가 직원들을 비롯해 아주 잘 짜여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곳에서 직원들과 소통하며 작지만 강한 해양경찰서를 만들고 싶습니다. 책에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통해서라도 개선되고 발전하는 방안을 연구해야겠지요. 직원들도 열정을 갖고 자신들의 임무에 충실해서 바다를 편안하게 지킨다면 시민들은 물론이고 온 국민들에게도 평안함을 안겨줄 수 있겠지요”
아직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김영모 서장은 한국방송통신대학 행정학과를 거치고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수료한 학구파다. 또한 해양경찰청 훈련단과 장비기술국 함정사업계장, 인사교육 담당관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치며 치밀하고 꼼꼼한 업무 처리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10월 13일에는 평택항 마라톤대회에서 직원들 30여명과 함께 10km를 뛸 예정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1주일에 2번씩은 매번 7~8km씩을 뛰고 있지요. 제 스스로 건강을 지켜야 어떤 일이든 또 열정을 갖고 헤쳐 나갈 수 있으니까요”
어려운 일일수록 지휘관이 앞장서야 한다는 소신을 가진 김영모 서장, 누구보다도 많은 열정으로 자신의 삶을 충실히 이끌어온 그는 이제 평택항을 지키는 해양경찰서의 수장으로서 자신의 넘치는 열정을 쏟아 평택항과 서해바다의 안전을 지켜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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