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6월 4일

전년도에 비해 비약적으로 증가
목표액 110만원 할당 강제 모금


 

 

 

“平澤郡에서는 本年度 貯蓄 增加 目標額이 一百十萬圓으로 決定되어 前年에 比하여 飛躍的 增加인데, 此를 達成함에는 官民一體 總力을 擧하여 貯蓄增强에 邁進할 必要가 있으므로 各 邑面 實情에 慮하여 貯蓄 增加 方策을 樹立하여 銃後盤石의 貯蓄報國의 成果 昂揚에 萬全을 期하고 있는데, 各 邑面 割當額은 如左하다.(하략)”(『매일신보』 1942년 6월 4일)

한때 ‘저축’이 최고의 미덕인 시대가 있었다. 저축의 사전적 의미는 “소득 중에서 소비로 지출되지 않은 부분”이지만 보다 많은 과정을 내포하고 있다. 즉 “미래의 소유를 위해 경상소득의 일부를 비축하여 두는 과정 또는 일정기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축적된 자원의 흐름”을 의미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좀 복잡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돈을 모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은 은행이라는 금융기관에 맡겨두는 방법도 있지만, 그냥 집에 모아두기도 한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맡겨두거나 모아두었던 돈을 사용한다. 때문에 저축은 우리 사회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어릴 적 많이 읽었던 ‘개미와 베짱이’가 저축의 필요성을 가장 잘 표현한 동화가 아닌가 한다.

저축은 개인의 필요에 따라서는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국가의 필요성에 따른 공공성이 강조되기도 한다. 1960년대와 1970년대 경제성장을 위해 저축이 강조되던 시기가 있었다. 1960년대는 “근로자의 푸른 꿈은 새살림적금으로!”(중소기업은행), 1970년대는 “귀여운 자녀에게 저축부터 가르치자”라는 표어가 있었다. 또 ‘올해는 총력 저축의 해’라고 하여, 저축을 장려하였다.

저축은 대부분 자율성에 의지하지만 그렇지만 않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강제적으로 저축을 해야만 하는 사례이다. 바로 일제강점 말기인 전시체제기였다. 일제는 1930년대 이후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전시상황에서 무엇보다도 전쟁 물자를 만들어내는데 자금이 필요하였다. 각 지역별로 저축액을 할당하였는데, 1942년 하반기 평택의 저축액의 목표는 ‘1백 10만원’으로 정해졌다. 이는 전년도에 비하면 엄청난 증가분이었다. 결국 이를 달성하기 위해 군청에서는 ‘관민일체의 총력’이라는 명분으로 각 면에 할당을 하고 강제적으로 저축하도록 하였다. 당시 지역별 할당 금액은 다음과 같다.

평택읍 38만원, 송탄면 10만원, 북면 5만원, 서탄면 5만 1000원, 고덕면 6만 5000원, 오성면 11만원, 청북면 9만 1000원, 포승면 7만 7000원, 현덕면 7만 8000원, 팽성면 9만 8000원.

일제가 전쟁을 위해 강제로 저축한 증서들은 일본의 패망과 함께 휴지조각이 되었다. 일제의 식민지 조선인의 침탈은 이처럼 일상사에까지 미쳤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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