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만든 평양식 냉면 맛보세요”

평양 맛집으로 소문난 냉면집 운영
자신이 만든 최고의 음식으로 승부

 

 

 

환경은 사람을 지배하지만 그 환경을 지배하는 것은 또한 사람이다. 주어진 환경에 성실하게 적응하는 사람은 환경을 지배할 수 있고 그것이 가능해질 때 결국 자신이 원하는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다.

평양식 냉면 재현한 ‘평천면옥’

“평양에 있는 평천각은 전문 냉면집인 옥류관의 분점이에요. 원래는 청기와집인데 여기는 그냥 가게라 면옥으로 이름을 붙였죠. 평양에서 2년 동안 냉면집을 했는데 맛집으로 소문이 나서 하루에 수백그릇을 팔았거든요. 여기서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지난 8월 8일 비전동 평택시청 뒤편에 평양식 냉면전문점인 ‘평천면옥’을 개업한 북한이탈주민 이윤선(38) 씨에게서는 특유의 북한 사투리를 찾아보기 어렵다. 주방에서 모든 일을 혼자 해내면서도 환하게 잘 웃는 그녀는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더운 날씨도 잊을 만큼 기분 좋은 느낌을 안겨준다.

“평양이 고향인데 어릴 때도 어려움 없이 자랐고 결혼 후에도 큰 어려움 없이 지냈어요. 그런데 집에만 있는 성격이 못돼서 공장에서 관리직으로도 일했고 중국에서 물건을 들여와 팔면서부터는 돈 버는 재미를 느껴 순대장사도 하고 냉면집도 하며 돈을 모았죠. 북한도 요즘은 시장경제가 도입돼서 자신이 일한 만큼 잘 살 수 있거든요”

이윤선 씨는 2012년, 당시 세 살이던 딸을 데리고 남한으로 내려왔다. 여덟 살이던 아들과 남편, 부모까지 모두 북에 있다는 그녀는 한 번도 가족과 헤어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지만 중국에서 선교사를 만났다는 이유로 막상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하니 이런 저런 생각을 할 새도 없이 도망치듯 그곳을 떠나야 했다고 털어놓는다.

 

북에 두고 온 그리운 가족들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1월에 평양에서 두만강 국경까지 딸아이를 데리고 기차로 15일을 갔어요. 그리고 수면제 먹인 아이를 업고 200미터밖에 안 되는 강을 혼자서 4시간 동안 기어서 건넜죠. 눈이 소복이 쌓인 달밤이어서 어떤 물체도 눈에 잘 띄었으니 움직이지 않는 돌멩이처럼 보여야 했거든요”

이윤선 씨는 그때를 떠올리며 잠시 말을 멈춘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지만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는 그녀는 제대로 설명할 새도 없이 무작정 집을 떠나야 했지만 지금도 북에 있는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송금하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부모와 자식의 도리를 하고 있다고.

“일주일 넘게 이동할 때는 울지 않았는데 막상 중국에서 베트남, 태국을 거쳐 인천공항에 들어오고 나니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다시는 집에 갈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 다시는 가족을 만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여덟 살 때 두고 온 아들이 지금은 열세 살이 되었는데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빨리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윤선 씨는 남한에 와서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긍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그리고 강한 생활력으로 좌절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키워주셨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냉면집을 열 수 있었던 것도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의 성품이 큰 몫을 차지했다.

 

남한에서 다시 시작한 냉면집

“평양에 있을 때 옥류관 주방장에게 달러를 주고 직접 냉면 만드는 법을 배웠어요. 그때도 맛이 제대로 안 나오거나 음식이 내 맘에 안 들면 다 버렸죠. 아깝다고 한 그릇을 팔아 손님을 놓치느니 지금 조금 손해 보는 게 낫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어요. 남한에 나와서도 북한에서 했던 맛을 내려고 메밀로 만든 면을 먹으며 한 달 동안 연구했죠”

이윤선 씨는 남한에서 냉면집을 하기 위해 서울의 맛있다는 냉면집은 모두 돌아다녔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 시간여를 기다려서 맛본 냉면도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았고 결국엔 진짜 평양식 냉면을 선보이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자 자신감을 갖고 개업을 하게 됐다고.

“평양에서 태어났으니 이런 면옥도 해볼 수 있고, 인생에서 어려운 때도 있었으니 지금의 어려움도 잘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북한이탈주민을 안 좋게 보는 분들도 있겠지만 열심히 살다보면 다들 인정해주시지 않을까요. 설령 장사가 잘 안된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려고요”

통일이 된 후 북에 있는 가족들을 만났을 때 남한에 와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는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다는 이윤선 씨, 사는 동안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다는 그녀는 자신이 열심히 노력한 음식을 먹고 돈을 내주는 손님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것처럼 언젠가는 평택사람들이 자신을 키웠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며 환하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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