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동기로 선택한
결핍소비의 경우
더 이상
불편함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지속성은 더욱 짧아진다

 

 
▲ 이수연 전 부이사장
한국사진작가협회

최근에 스마트 폰에서는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흉내 낸 애플리케이션 ‘구닥’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구닥은 사진촬영용 앱을 말하는데 필름 한 롤을 다 찍으면 다시 한 롤을 장착해야 촬영할 수 있는 것처럼 처음 24장을 다 찍으면 1시간을 기다려야 다시 그 만큼을 충전할 수 있다. 그뿐이 아니다. 현상소에 맡긴 후 사진을 받기까지 시간이 걸리듯 3일이 지나야 그 사진을 볼 수 있다고 하니 속도와 편의성 그리고 다양성이 미덕처럼 되어 버린 ‘요즘 같은 세상에’ 그야말로 불편하기 짝이 없는 기능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출시 한 달 반 만에 40만 회 이상 다운로드했다.

심리마케팅 전문가 범상규 교수는 그의 저서 ‘멍청한 소비자들’에서 이런 현상을 ‘결핍소비’라고 했다. 소비자가 가지고 있는 결핍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심리를 말하는데 때로는 편리함 대신 불편함이 소비가치의 핵심이 된다는 것이다. 질 좋고 비싼 가구를 소유하기 위해 직접 조립해야 하는 DIY가구, 완주했을 때의 성취감을 주는 마라톤이나 장거리 순례길, 추억을 되살려주는 LP음반의 복고현상 등등이 이에 해당한다. 요즘 들어 부쩍 필름카메라를 찾는 현상이 늘어난 것도 마찬가지다. 못해본 과거의 행위에 대한 향수자극이겠다. 

문제는 이런 소비욕구 중 상당수는 지속기간이 매우 짧다는 것이다. 몇 년 전에 다시 일었던 7080 통기타 붐이 영화 ‘세시봉’으로 이어졌지만 거기까지였던 것처럼 말이다. 지금의 음악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단조로운 통기타 음악을 찾는 젊은 가수나 소비자가 없기에 수십 년 전 황금기를 누렸던 추억의 가수만으로는 다시 그때를 재현할 수 없는 것이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고현상이나 불편함을 감수하는 유행은 형태와 내용을 달리하여 계속 나타난다. 이런 현상을 또 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회피동기 또는 원트want심리라고 했다. 남들은 갖고 있는데 나만 없을 때 느끼는 고립, 낙오, 단절 같은 상태에서 회피하려는 욕구를 말한다. 좋아하는 게 아닌데도 왠지 해야 하는 것 같아서 원하는 심리 말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경험적으로 볼 때 일단 충족하면 더 이상 거들떠보지 않는다. 해 본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회피동기로 선택한 결핍소비의 경우 더 이상 불편함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지속성은 더욱 짧아진다. 

사진은 더욱 분명하다. 1839년, 세상에 처음 등장하여 세상을 충격으로 빠뜨린 이래 지금까지 한 순간도 같은 자리에 머무른 적이 없었다. 기존의 사진술은 언제나 새로운 그것에 밀려났고 단 한 번도 다시 돌아간 일이 없다는 것은 사진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예술을 표방했지만 특정 소수의 예술가가 아니라 불특정 다수인 대중에 의해 ‘쉽고 빠르고 편하게’를 위해서 계속 진화하는 특성 때문이다. 물론 오늘의 디지털 사진 시대에서도 과거의 사진술로 회귀하려는 시도가 무수하게 있었지만 단언하건데 한 번 해본 것에 만족했을 뿐이다. 그리 말 할 수 있는 이유는 미국증시의 블루칩이었던 코닥이 거기서 퇴출된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 필름소비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디지털 사진의 유용함과 우월함을 결코 뛰어넘을 수 없어서다. 

결국 ‘구닥’의 붐 현상이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사용수단이 될지 한 번 흥미를 유발하고 스쳐가는 것이 될지 시간이 조금 지나면 가려질 테지만 이런 현상에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바로 지역 문화현실과의 연계성이다. 

최근에 열린 200인 원탁토론에서 많이 거론된 ‘대표축제, 지역 정체성 콘텐츠 개발’같은 것들이 그렇다. 우리의 것을 찾고 정착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상대적 가치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 우후죽순처럼 일었던 전국의 축제가 몇 개만 남고 거의 사라졌으며 지역 정체성을 내세운 문화행사에서 딱히 기억나는 게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회피동기로 만들기에 급급하다면 수명 짧은 결핍소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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