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부터 뿌리까지 건강에도 만점이죠”

인삼과 함께 해온 30여년 베테랑
샐러드 삼, 건강한 식품으로 자부심

 

 

 

예로부터 인삼은 귀한 약재로 사용돼 왔고 그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러나 약재로만 생각했던 인삼이 요즘은 일상의 식재료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30년 동안 인삼과 함께 해

“아내와 함께 시장에서 인삼 판매를 30년 동안 했어요.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이라 장사에는 좀 안 맞지만 그래도 장사를 오래 하다 보니 직접 재배하는 것만 빼고는 인삼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알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팽성읍 신궁리에서 2000평 규모의 고려인삼농원을 운영하고 있는 박정순(54) 대표는 농원 이전에 이미 평택 통복전통시장에서 ‘고려인삼한약방’을 30여년 운영한 인삼 베테랑이다. 가게를 처음 할 때만 해도 인삼과 식품을 연계해서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삼계탕에도 인삼을 넣는 등 약재와 식품 사이를 넘나들기 시작했다는 역사까지도 그에게는 일상의 일부다.

“1990년대에는 인삼이 약재가 아닌 식품으로 인식되기 시작해서 잔칫집에서도 인삼으로 튀김을 하곤 했어요. 일주일에 잔칫집 2~3곳만 있으면 돈을 벌었는데 보통 한번에 10채씩 사가곤 했죠. 저 역시 가게를 하면서 인삼을 식품으로 먹는 방법을 많이 연구했어요. 김치에 인삼을 넣으면 김치가 쉽게 익지 않는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됐죠”

인삼이 식품으로 인식되면서부터 삼계탕용 인삼도 많이 팔렸다. 하루 평균 300만 원 정도를 버는 날들이 이어지자 부부는 50대가 되면 장사를 그만두고 각자의 취미생활을 하면서 노후를 보내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2001년경 조류독감이 발생하면서 매출이 급감하자 박정순 대표는 결국 다른 방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고.

힘들었던 ‘샐러드 삼’ 재배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인삼과 관계된 것이었어요. 워낙 오랫동안 인삼과 함께 하다 보니 인삼에 관해서는 전문가가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재배는 또 다른 문제였어요. 2013년 새싹 삼을 재배하기로 마음먹고 농장을 시작했는데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 많이 힘들었죠”

박정순 대표는 2014년 1월에 첫 재배를 시작했고 첫 해에 농사가 잘 되면서 희망에 부풀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판로였다. 아무리 찾아봐도 판로가 보이지 않자 새싹 삼은 심어둔 채로 손댈 수조차 없었고 결국 시설투자비까지 합쳐서 수억대에 달하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심어놓은 샐러드 삼을 하나도 못 팔고 그대로 썩혀야 했으니까요. 사람이 이래서 자살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했죠. 정말 많이 힘 들었는데 그래도 다행히 잘 이겨냈어요. 모든 것은 마음먹기 달렸다는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가 제 좌우명이었거든요”

박정순 대표는 시설채소 재배를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평택시에서 운영하는 슈퍼오닝대학은 물론 경기농업마이스터대학, 한경대 원예학과 석사과정에서 마케팅 분야도 배우는 등 다양한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첫해에 큰 손해를 입은 만큼 회복이 쉽지는 않지만 현재는 판로가 많이 생기고 다양한 가공식품까지 연계하면서 차츰 이곳에서도 희망을 꿈꾸고 있다.

모든 것은 ‘마음’이 가장 중요

“아내가 지금도 통복시장에서 고려인삼한약방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 키운 샐러드 삼을 그 곳에서도 판매하고 있어요. 주로 식당에서 많이 사가곤 하죠. 샐러드 삼 한 뿌리가 나오려면 최소 3년은 걸려야 하는 만큼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데 겨울 동안 얼었다 녹아야 발아가 되고 싹이 나오기 시작하면 1년 넘게 관리해야 하는 게 샐러드삼이에요”

고려인삼농원에서 나오는 브랜드 ‘샐러드 삼’은 평택에 미군기지가 이전하면서 약 성분을 떠나 고급 샐러드용 야채로 보급하기 위한 방안으로 착안했다. 현재는 샐러드뿐 아니라 비누로 만들거나 장아찌로 만들어 판매도 하는데 다양한 약재를 넣어 끓인 간장에 샐러드삼 30뿌리 정도를 넣어 절인 샐러드 삼 장아찌는 예약주문만 가능하고 판매가격은 1만원으로 책정돼 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란다는 윤동주 시인의 시처럼 그렇게 살려고 노력해 왔어요. 모든 것은 마음먹기 달렸으니 내가 좋은 마음을 먹으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죠. 인생은 등산과 같고 정상에 올라가면 내려올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니 늘 준비하며 살려고요”

소사벌미술대전 문인화 초대작가이기도 한 아내가 마음껏 활동할 수 있게 해주지 못한 것이 가장 마음 아프다는 박정순 대표, 돈을 벌기 위한 일을 하는 기간을 현재는 65세로 정했다는 박정순 대표는 국궁을 제외하면 농사짓는 것밖에 취미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농사는 하늘이 돕는 것이니 하늘만 도와준다면 내년에는 어느 정도 수익을 낼 수 있지 않겠느냐며 환하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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